(5)거리의 무법자 택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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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과속에 목숨을 건다.
무섭게 질주하고 미꾸라지처럼 끼여들었다가 다시 아슬아슬하게 차선을 바꾸며 추월하는 거리의 곡예사 택시.
거리·시간 병산제가 실시됐어도 승객들은 여전히 과속에 몸을 떨고 합승과 승차거부에 시달린다.
『퇴근 때마다「빈차로 나오게 된다」고 승차 거부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택시에 탔을 때도 양해한번 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합승을 일삼구요. 도대체 병산제 실시로 달라진 게 뭐가 있습니까. 회사원 박수택씨(41·서울역촌동)의 푸념.
지난 1일 하오10시40분쯤 서울을지로5가 방산시장앞.
서울과 경기도택시 10여대가 줄지어 서있다. 이른바 「돗꼬오따이」(특공택시)대열.
『성남, 성남』-. 손님을 외쳐부르는 20대 후반의 택시운전사는 10여분만에 승객 4명을 태우고 시동을 건다.
요금은 한사람에 1천5백원씩.
한남동을 빠져나갈 때까지 차선을 바꿔가며 곡예운행하던 택시는 제3한강교에 접어들면서 속력을 낸다. 시속 1백30km.
중앙분리대도 없고 편도2차선밖에 안되는 도로인데도 어둠 속을 질주한다.
급정거하거나 아스팔트가 팬 곳에서 차체가 흔들릴 때마다 승객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손잡이나 앞좌석을 움켜잡으며 숨을 들이킨다.
출발한지 25분, 31km를 달려온 택시는 성남시 신여동 종합시장 앞에 멈춰 선다.
『휴우』-. 승객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이마의 땀을 닦는다.
『돈이 빤히 보이는데 쏘지(과속으로 달리지)않을 수 있습니까. 사납금(6만8천원)을 채우고 「몇 푼」손에 쥐려면 어쩔 수 없지요』 서울∼성남간을 2년째 뛴다는 경기도 K운수소속 김영상씨(28). 잘만 쏘면 사납금을 채우고도 매일 2만∼3만원정도는 따로 손에 쥘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수도권의 특공택시 집결지는 서울을지로5가(성남행)와 영등포역(부평·인천), 수색 (능곡), 서울역·서소문(인천), 사당동(과천) 등 5∼6개소.
서울시내에서도 강변도로와 3·1고가도로 등에서는 택시들이 시속 1백km를 내며 과속에 목숨을 건다. 모두들 사납금과 일당 때문이다.
『병산제요? 운전사수입을 보장한다고요? 사납금외에 더 벌면 운전사와 회사가 6대4로 나눠먹게 돼있지요. 종전에는 사납금을 빼고도 5천∼1만원은 따로 집에 가져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40%를 회사에 뻣기게 된 셈이예요. 서울 K교통소속 김철민씨(36).
김씨는 병산제 실시 이후 손님이 줄어 오히려 종전보다 20∼30km를 더 뛰고있다고 했다. 사납금과 짐에 가져갈 몇 푼을 위해서는 과속과 합승 및 승차거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서울택시의 하루 평균 주행거리는 5백29km. 일본 동경택시의 3백13.7km보다 무려 2백16km나 많은 실정이다.
택시 1대에 하루 수송인원도 서울 1백3명, 동경 51명으로 무려 2배나 많다. 사고도 주행거리 1억km에 일본은 1백30건인데 비해 우리는 9백30건으로7배가 넘는다.
일본의 경우 기름값이 우리보다 싼데다 택시요금이 비싸(한국의 4.3배) 운전사들이 많은 월급(한국의 3.5배)을 받기 때문에 수입을 늘리기 위한 난폭운전도 없고, 따라서 사고도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우리는 올 들어 6월말까지 상반기동안 전국에서 발생한 6만2천1백10건의 교통사고 중 영업용차량사고가 49.2%인 3만5백67건을 차지했고 이중 절반에 가까운 44.8%(1만3천6백86건)를 택시가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금이 오르는 등 이익이 생길 때마다 그 이윤을 업주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병산제도 마찬가집니다. 요금체계에 변화가 있으면 그 이익은 마땅히 운전사들에게 돌아가야지 행여 사납금을 또 올린다면 난폭운행은 조금도 개선될리가 없지요. 교통연구가 조씨는 우리도 차제에 택시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해 근원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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