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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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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0.28 국회부의장 선거 이변과 함께 신민당이 제명이니, 징계니, 당직개편이니 하고 들끓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민정당측은 조용하기 짝이 없다. 29일의 의원총회에서도 단 세 사람이 나와 발언한데 그쳤고 결론도 책임보다는 자성론으로 기울었다.
야당에 대한 정치적 신의를 저버린 책임도, 당의 지시에 불복한 항명성의 대량이탈도 일단 덮어두자는 쪽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이번 사태를 통해 노출된 당 지도부의 허점과 보조불일치현상에 대해 뭔가 내부적인 정비 조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민감한 눈길이 오가고 있다.
이번에 노출된 항명성 산표가 단순히 김대중씨에게 분풀이를 한다는 차원을 넘어 야당에 대한 반감에 편승한 당 지도부에 대한불만의 표시라고 볼 수 있는 요소도 적지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우선 지적돼야 할 점은 이번 사태를 통해 여당으로서는 드문 혼선이 두드러지게 노출됐다는 점이다.
28일의 선거상황을 잠시 되돌아보면 그런 현상을 쉽게 간취 할 수 있다. 운영위원장실에서 이세기 총무주재로 열린 총무단-상임위원장-상임위간사연석회의에서 이 총무의 「지시」는 지시로 먹혀들지 않았었다. 우선 김식 위원장이 『의원들의 독자적인 투표행위』를 강조하다가 이 총무와 가벼운 언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위원장들은 거의 입을 떼지 않았지만 이들도 이 총무의 지시를 새겨듣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총무는 여전히 상임위원장등 소속의원들에게 파고들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회의가 끝나자 몇몇 위원장·간사들은 누구의 특별한 선도도 없이 우르르 권정달내무위원장의 방으로 몰려갔다.
이 자리에서도 이용희의원을 부의장으로 밀어줘야 한다는 당지도부의 「지시」보다는 김대중씨와 야당에 대한 성토와 함께 투표는 의원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뭐』라는 얘기들이 부담없이 오갔다고 한다. 물론 분위기는 전혀 심각하지 않았고 모두가 가벼운 기분들이었다.
거의 비슷한 시간에 사무총장실에서 열린 시도지부장회의에서도 조기상·김정남·정동성의원등이 『이용희의원을 밀어주라』는 지시에 대해 『일반의원들이 반발할 우려가 있으므로 강요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왔다.
당지도부의 생각이 중간당직자를 거치는 과정에서 그대로 일반의원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정순덕총장은 회의가 끝나자 노태우대표위원에게 당내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보고를 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전혀 강구되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들을 볼때 이번 파동의 과정에서 민정당안에 서너갈래의 다른 움직임들이 있었던 것으로 분류할 수가 있다.
김식·조기상의원등 조연하의원과 동향인 호남출신의원들이 상당히 똘똘 뭉쳐 조의원 지지운동을 벌였고, 또 창당당시부터 가까웠던 일부 의원들이 이총무나 정총장의 지시를 가볍게 여겼던 흔적이 있다. 지시전달책임을 맡았던 어느 중간간부는 『몇몇 의원들에게는 손톱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고 『지시가 그대로 내려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중단된 흔적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밖에 5공화국 출범과 함께 정치에 참여한 일부의원들도 『우리를 비난할 때는 언제고 표를 달라는 것은 또 무슨 소리냐』 『국회부의장이 특정인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느냐』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런과정에서 말하자면 감정적인 동류의식같은 것이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일부는 상당히 조직적으로 움직였던 것 같지만 대부분 『동교동쪽에 한방 먹이자』는 장난스런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의 밑바닥에는 현 지도부의 원내전략에 대한 불만이 깔려있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노대표도 「충분한 토론의 자리가 마련되지 못한 점」을 당지도부의 잘못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아뭏든 민정당지도부로서는 이같은 이탈행위와 이를 조장한 일부 움직임을 어떤 방식으로든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벌써 당내일부에서는 이런 문제로 염려하는 기색들도 없진 않다.
그러나 이번 사태자체를 두고 책임추궁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당중심부에는 비록 야당과의 약속은 저버린 꼴이 되긴 했지만 내심으로는 그 결과에 은근히 만족해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29일 의원총회가 끝난 후 조기상의원동이 대표위원실에 들러 가볍게 사과할 수 있은 것도 그런 분위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또 이 사태에 대해 정색을 하고 책임추궁을 하자고 나선다면 그 파문이 당 지도부에까지 번질 우려도 없지 않다는 점이 있다.
당 지도부의 느슨하고 미숙한 통솔이 결국 이 같은 사태의 발생을 「방조」한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의 이탈자체를 당내에서 문제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고 앞으로 이런 일의 재발소지가 없도록 조정해 나간다는 방향이 될 전망이다.
다만 이를 계기로 당의 지휘체계를 확립하려는 노력은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당내의 문제가 아닌 대외적인 측면에서 국민에 대한 당의 이미지를 고려하고 야당과의교섭재개 필요성이란 차원도 있기 때문에 문책차원이 아닌 제한적인 당직개편의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아직 야당측이 어떠한 수습책을 들고 나올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만약 야당측이 대여교섭창구인 원내총무를 교체하고 원내로 복귀, 대여공세를 전개할 경우 민정당으로서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이다.
특히 이번 사태에서처럼 원내총무의 지시가 먹혀들지 않고, 의원들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앞으로 남은 험난한 국회일정을 끌고 가기는 곤란하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야당측이 국회부의장선거결과에 대한 책임을 여당측에 제기하고 필요한 조치를 요구해 온다면 여당의 생리상 민정당의 입장은 오히려 강경쪽으로 움츠러들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보면 어차피 남은 국회일정이 파행으로 점철될 것으로 예측된다면 당직개편없이 이번 국회의 나머지 일정을 대처한다는 쪽으로 돌아설지도 모를 일이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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