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에네스 콰르텟, 베토벤 생애를 체험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기사 이미지

[사진 크레디아 제공]

에네스 콰르텟이 25일 역사적인 베토벤 현악 4중주 전곡 연주를 시작했다.

제임스 에네스, 에이미 슈워츠 모레티(바이올린), 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라), 로버트 드메인(첼로)으로 구성된 이들은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4중주 1·11·13번 등 초·중·후기의 작품 한 곡씩을 연주하며 첫 공연을 장식했다. 놀랄 만한 호흡으로 들려준 수준 높은 연주였다.

초기 4중주 1번 1악장에서 에네스 콰르텟의 첫인상은 가볍고 일사불란했다. 두 대의 바이올린이 한몸 같았다. 에네스의 바이올린 음색은 황홀하게 귀에 감겼다. 느린 2악장에서 악기들끼리 서로 귓속말을 하듯 내밀한 대화가 이어졌다. 때로 한숨 쉬듯 비애감도 느껴졌다. 물 흐르듯 지나간 3악장에 이어 4악장은 정교했다. 각 성부가 투명하게 구분되고 완급 조절도 뛰어났다.

이들의 연주를 직접 들으니 베토벤은 현악 4중주 1번부터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기사 이미지

[사진 크레디아 제공]

중기 4중주 11번 ‘세리오소’ 1악장은 빠른 템포로 시작됐다. 4 악기의 총주가 한 악기인 듯했고 긴장감에 숨이 막혔다. 2악장은 첼로의 저음이 돋보였고, 투쟁을 연상시킨 3악장을 지나, 4악장에서는 가냘픈 영혼의 춤을 보는 듯했다.

후기 4중주 13번은 숭고하고 오묘했다. 5악장 ‘카바티나’를 연주할 때 소름이 돋았다. ‘짧은 노래’란 카바티나의 의미를 상기시키며 넉 줄씩을 가진 넉 대의 현이 형이상학적인 노래를 들려줬다. 리처드 용재 오닐의 공저 ‘나와 당신의 베토벤’에서 스승 어빈 아이젠버그는 ‘카바티나’를 “베토벤의 눈물 그 자체”라고 말한다. 책에 나온, 이 곡을 듣고 눈물 흘리던 노신사도 떠오른 연주였다. 형언할 수 없는 고매함으로 듣는 이를 고양시켰다.

연주자와 프로그램, 음악홀이라는 세 요소가 모두 잘 들어맞은 공연이었다. 베토벤의 생애를 체험하는 듯했다. 연주자와 청중의 집중력은 공연 내내 유지됐다.

이들의 베토벤 전곡 연주는 오늘(2시, 8시)과 다음달 1일(8시)과 3일(2시, 8시)로 이어진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