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소득 2만弗' 그림을 그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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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72는 재미있는 숫자다. 1에서 9까지의 자연수 중 두개를 빼고는 어느 것으로 나누든 우수리 없이 딱 떨어진다. 포용력이 큰 숫자라고 하겠다.

소득이나 월급이 몇 년 만에 두배가 되는지 계산할 때 72의 진가가 나온다. 소득이 6%씩 증가한다면 12년(72÷6) 만에, 그리고 9%씩 늘어난다면 8년(72÷9) 만에 두배가 된다.

8년 전 우리의 1인당 소득이 처음으로 1만달러를 넘어섰을 때 많은 사람은 한편으로 성취감과 희망을 맛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당시 나는 불안과 희망의 근거를 찾으려고 통계를 모으고 간단한 계산을 했다.

첫째, 소위 '마(魔)의 1만달러 장벽'이 과연 존재하는가를 알아야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보다 조금 앞서 가던 이웃 일본과 대만의 경험을 보면 있을 수도 있다는 답이 나온다.

일본이 소득 1만달러(1995년 달러가치) 수준을 넘어선 것은 73년이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석유파동 때문에 성장률이 폭락하고 만다. 대만의 경우에도 91년 1만달러 수준을 넘어서고 난 다음부터는 성장률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

당시 사람들이 이 문제로 걱정하며 불안해했던 것은 이미 우리 경제에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심화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 때가 크루그먼 교수 등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경제의 고도성장이 머지않아 끝장난다는 경고를 발표한 직후였기 때문이었다.

둘째로, 희망적인 사항이지만 만약 우리가 적절한 대응책으로 문제점을 해소한다면 언제쯤 소득 2만달러 시대에 들어갈지도 계산해 보았다. 환율이 안정된 상태에서 연평균 6% 성장과 3~4%의 물가상승을 가정하면 소득 2만달러는 8년 후인 2003년에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소득 2만달러가 돼 있어야 할 지금 시점에서 정부는 이것을 새삼 장기목표로 삼고 세부 전략을 마련 중이다. 잘 해도 다시 7~10년을 기다려야 2만달러 시대가 열린다고 한다.

국민을 또다시 제자리걸음 시키지 않으려면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과거 8년간의 경험에서 교훈을 찾아보자면 가장 중요한 것이 최고통치자의 의지와 지도력이라고 하겠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초기에는 의욕을 갖고 경제문제 해결에 노력했지만 말년에 이르러 친인척과 측근들의 부정부패 문제로 일손을 놓다시피한 것이 경제를 곤두박질치게 한 근본 원인 중의 하나로 꼽힌다. 대통령과 그와 가까운 사람들이 새겨봐야 할 일이다.

다음으로 국민의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기보다 화합과 평화를 증진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단합된 힘이 있어야만 우리 앞에 놓인 험난한 장애물을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중국이 맹렬한 기세로 추격해 오는 상황에서 남과 북, 동과 서, 그리고 보수네, 진보네 하며 나누어져 싸울 겨를은 없다. 현 정부에 대해서는 코드를 앞세워 적과 동지를 구분하고 속좁게 국가를 운영하려 한다는 비판이 많다. 숫자 72만큼 큰 포용력을 가져야 하겠다.

소득을 두배로 올리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백화점식으로 정책을 나열해 주의를 분산하기보다 한동안은 다른 일들을 제쳐두더라도 두 가지 중요한 과제에만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사관계 개선과 규제완화가 그것이다. 이것이 안 되기 때문에 국내 기업은 계속 해외로 빠져나가고 해외자본가는 국내 투자를 꺼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이들 과제만이라도 제대로 풀어간다면 성장과 고용은 물론 분배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다.

노성태 경제연구소장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