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맹자 외며 서당공부 삼매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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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경상남도 산청군 지리산 동남쪽에 위치한 효산(孝山)서원. 지난 1일부터 이 산기슭엔 서울에서 내려온 27명의 대학.대학원생의 한문 고전 송독(誦讀) 소리가 밤낮으로 울려퍼졌다.

이들은 민족문화추진회(회장 조순) 부설 국역연수원에서 한문을 배우는 학생들이다. 미래의 고전 번역가를 꿈꾸며 20일간 일정으로 이곳에서 합숙하고 있다. 오진 6시에 일어나 오후 11시까지 공부만 하는 강행군이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 9일 오후 거세게 내리치는 장맛비 소리에 맞춰 학생들의 송독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다음날 있을 중간 시험때문이다.

시험이란 공부한 내용을 모두 암송하고, 해석하고, 한문으로 써내는 것이다. 이들은 각기 수준에 따라 '통감절요' '논어' '맹자' 그리고 한시(漢詩) 등을 읽고 있었다.

"큰 소리로 계속 반복해 읽는 이같은 송독 공부는 처음입니다. 첫날엔 어색해서 서로 눈치도 보고 잘 못했으나 선생님의 송독을 따라 하다 보니 점차 재미를 느껴요. 집중적으로 암기하며 공부하는 가운데 글자 하나 하나의 의미가 되새겨지면서, 대학교나 국역연수원에서 한 학기 동안 했던 것보다 더 많은 분량을 내 것으로 소화하는 것 같습니다."

참석한 학생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털어 놓은 체험담이다.

이들이 느낀 것은 이른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 이라는 전통 교육 방법의 효과였다.

합숙의 일정은 오전엔 강의를 듣고, 점심시간 이후 오후 11시까지는 아침에 배운 것을 외울 때까지 읽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식사 전에 전날 배우고 암기한 것을 교수 앞에서 암송하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또 시작한다.

이들은 전통 서당에서 했던 것처럼 토를 달아 한문을 읽었다. 토를 붙여 읽는 방법은 서당의 명멸과 함께 점차 사라져가기에 더욱 특이했다. 이에 대해 국역연수원의 성백효 교수는 "한문 초보자들은 토를 달아 뜻을 새기며 큰 소리로 읽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어느 정도 익숙하게 되면 토를 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조선왕조실록' 등을 완역해내 유명해진 민족문화추진회는 국내의 대표적 한문 고전 번역단체다. 그 부속 기관인 국역연수원은 논어.맹자 등을 가르치며 고전 번역가 후보를 양성하는 곳이다.

특히 설립 40주년을 앞두고 국역연수원은 역점사업으로 장학생 제도를 도입해 우수 인재 조기 발굴에 나서며, 올해 초 동양학을 전공하는 2학년 대학생 10명을 선발했다. 해마다 10~20명씩 선발할 예정이다.

장학생 제도의 주요 프로그램의 하나가 여름.겨울 방학 기간에 실시하는 전통 서원 교육이다. 서당식 도제교육의 체험이 한문의 문리(文理)를 터득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정태현.성백효.박소동 등 전임 교수진이 모두 서당에서 공부한 마지막 세대이기에 전통의 맥을 잇는 의미도 있다.

굳이 이렇게 산골 서원에 와서 공부하는 이유를 묻자 박소동 교수는 "서원의 본래 목적이었던 교육 기능을 되살리는 의미가 있다"면서 "앞으로는 합숙 기간 중 지역의 초.중.고 학생들에게 특별 한문 교육도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0일 아침 시험을 보느라 분주한 가운데서도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처마끝에서 한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이 서원 바닥에 깊은 홈을 파 놓고 있었다. 이 합숙생들 가운데 탁월한 고전 번역자가 나올 것인지 기대해 볼 일이다.

산청(경남)=배영대 기자

<사진 설명 전문>
경남 산청군에 위치한 효산서원에서 전통 서당식 한문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공부한 내용을 외우고 있다. 일종의 중간 고사다. 민족문화추진회 부설 국역연수원은 1~20일 국역장학생들을 중심으로 합숙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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