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식품근절, 소비자 운동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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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우리의 식품공해에 대한 걱정은 식탁을 대하면서 공포를 느낄 지경에 이르렀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가짜 참기름·가짜 고춧가루가 횡행하는가 하면 물 먹인 쇠고기는 오늘도 식육점에서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다. 거기다가 가짜 간장, 가짜 고추장에 불결한 제조과정까지 가세하는 식품위생 현실울 상기하면 밥맛이 싹 가시는 정도가 아니라 식탁 자체가 두려옴의 대상 같은 느낌이 든다.
이처럼 극심한 식품공해문제가 대두될 째마다 일시적인 단속이나 엄포로 대증적인 조치를 취해오던 정부가 이번에는 「양절」이라는 기치를 높이 들고 나오면서 이를 실천하기 위한 방법으로 식품위생 관련 법규를 정비하고 벌칙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법규의 보강이 필요한 조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중요한 것은 법규의 암정한 운용과 집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지난 62년 제정이래 5차례나 개정·보완된 식품위생법과 그 시행령이 있고 80년에 제정된 소비자보호법이란 게 엄연히 존재한다. 각 조문을 비교해 뜯어보아도 선진국의 관련법규에 비해 결코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불량식품의 폐해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음은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단속을 못했거나 안 했거나 두 가지 중에 하나이거나 두 가지 다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못한 것은 인력과 설비의 부족에 탓을 돌릴 것이나 안한 것은 집행자와 범법자가 법규를 우농한 경우일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법규만 강화되면 부조리의 밀도만을 높일 공산이 커진다. 일벌백계의 파급효과도 기대되지만 오히려 역기능이 심화될 우려도 있다는 뜻이다.
당국의 법규 집행을 촉진시키는 역할은 소비자 스스로의 자기보호활동을 적극화하는 길 뿐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50년 전에 세계 최초로 소비자연맹을 조직하여 소비자조사협회와 공동으로 모든 상품에 대한 조사 및 감식을 철저히 해오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신형차에 대한 성능 테스트까지에 미치고 있다.
이웃 일본의 경우도 식품공해를 사회에서 추방하는데 성공한 것은 전적으로 소비자들의 극성스런 자구운동에 힘입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68년 소비군기본법 제정을 계기로 소비자연맹이 구성되고 본격적인 소비자보호운동이 전개되면서 이른바 소비자제일주의(consumerism)에 대한 자각이 고개를 들었다. 이들은 활동자금을 기업의 기부에 일체 의존하지 않고 소비자들의 추렴으로 자체 조달함으로써 중립을 지켰다.
소비자보호법을 엄정히 운용·집행하도록 정부를 감시하는 한편 유해한 식품첨가물의 사용금지 요구, 식품성분 조사, 부당 표시 고발 등 식품행정의 시정을 촉구하는 전국적 캠페인을 벌이며 정부에 대해 압력을 가했다. 순간 또는 정기간행물을 발간하여 유해식품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제공, 대대적인 불매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학자나 전문가들의 협조를 얻어 고도의 이론으로 무장하고 정치적·법적 투쟁을 확산시켰다. 공해재판에서 업자에게 유리한 판결이 관례였던 일본법정이 『오염을 확실히 입증할 수 없을지라도 그것을 추정할 충분한 자료만 있으면 된다』(72년 이따이이따이병재판)는 원고승소판결을 내린 독특한 법리론도 이 무렵에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부정·불량식품을 뿌리 뽑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식품제조업자의 양심이요 법의 엄정한 집행이다. 그러나 이를 촉진시키는 것은 소비자들의 자기보호활동의 적극화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 개인의 각성과 소비자단체의 소비자들에 대한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이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단체는 물론이고 식품업자들의 관련협회가 식품조사와 감식 기능을 확충하여 자기보호와 방어능력을 강화하고 우수한 제품에 대한 신뢰와 판촉기능을 활성화시켜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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