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맞으며 추모 행렬 “올랜도는 강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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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올랜도 잔디 광장에서 시민들이 총기 테러로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올랜도=채병건 특파원]

14일 저녁(현지시간) 짙은 먹구름이 깔린 하늘 아래 올랜도 도심의 닥터필립스예술회관 앞 잔디 광장. 나이트클럽 총기 난사 테러로 희생된 49명을 추모하는 촛불과 꽃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테러참사 사흘째, 올랜도에 가다
펄스 일대, 여전히 경광등 번쩍여
봉사자들 음식 돌리며 슬픔 나눠

이 곳에서 호세 마르티네스(36)는 주저 앉아 울고 있었다. 그는 “12일 밤 친구를 펄스 나이트클럽에 태워다 줬는데 다음날 새벽 엄청난 소식을 들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울먹였다. 마르티네스의 친구로, 헌혈은행 ‘블러드원’ 직원인 로돌포 아얄라는 펄스에서 사망했다. 마르티네스는 “내가 죄인”이라며 눈물 지었다. 그는 “살인범에게 편안히 죽을 권리를 줘선 안 된다”며 분노했다.

광장에 모인 추모객 100여명 중엔 연신 눈가를 훔치던 백인 여성 지니 웰치도 있었다. 그는 “ 말도 안 되는 학살”이라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테러 참사 사흘째인 이날 올랜도는 겉보기엔 평상을 되찾았지만 충격은 곳곳에 남아 있었다. 1시간 전 찾은 광장 인근의 올랜도지역의료센터 1층 입구엔 경찰 차량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다. 테러 당일 시신과 부상자가 옮겨졌던 곳이다. 병원에 들어가던 간호사는 “그날 엄청난 피와 엄청난 시신을 봤다. 지금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

전날 올랜도 현장에서 생방송을 진행하던 CNN의 간판 앵커 앤더슨 쿠퍼도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다 슬픔을 참지 못한 듯 목이 메며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2012년 동성애자임을 공개했다.

병원 건너편 인도에도 한 평(3.3㎡) 남짓의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촛불을 붙이던 호세 아브라도(42)도 친구를 잃었다. 그는 “그렇데 착한 사람이 왜 죽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친구 가족에게 전화 했지만 누구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슬픔 속에서도 위로를 나누고 분노를 이기려는 노력도 시작됐다. 이날 광장엔 자원봉사자들이 나와 물과 샌드위치를 나눠주고 있었다. 물병을 돌리던 캐서린 로레스(30)는 “죽은 이들은 누군가의 동생이자 자녀이자 가족으로 누군가의 사랑을 받던 이들”이라며 “올랜도는 강하다. 분노와 분열은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고 말했다.

병원 옆 추모공간에서 만난 흑인 여성 앤젤라 존슨은 소나기를 맞으며 “독서 모임에서 만난 회원의 사촌이 이번에 죽었는데 내 아들이 18살 생일 파티를 했던 다음날이었다”고 울었다. 존슨은 “마음에 악을 가진 이(테러범)가 있었지만 우리까지 악해져선 안 된다”며 “테러가 갈등과 차별로 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존슨은 인터뷰 직후 소나기가 그치며 쌍무지개가 뜨자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테러가 벌어졌던 펄스 일대는 번쩍이는 경광등을 단 경찰차들로 긴장감이 여전하다. 현장을 지휘하던 올랜도 오렌지카운티의 제리 드밍스 경찰서장은 테러범 오마르 마틴의 부인 누르 자히 살만이 수사의 핵심 인물임을 알렸다. 그는 “용의자가 부인과 디즈니월드를 사전 답사했고 게이라는 보도도 나왔는데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연방수사국(FBI)이 가족·지인 조사를 진행 중이다. 용의자 파악에서 그의 부인이 핵심이다”고 답했다. 뉴욕타임스는 부인이 남편의 탄약·권총집 구입 때 함께 했고 펄스를 답사할 때 남편을 차로 데려다 줬다는 진술을 FBI가 확보했다고 전했다.

올랜도 테러는 미 대선 쟁점으로 부상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급진적 이슬람’이라는 표현으로 무슬림 전체를 적대시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가치를 훼손하고 안보를 위협한다며 비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트럼프의 주장이) 민주적 이상을 반영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우리를 더욱 안전하지 않게 만든다.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미국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군인과 경찰이 트위터나 하고 케이블 쇼에 출연하는 정치인(트럼프 지칭)을 포함한 미국인을 보호하고 있다”며 “짖어대는 말들로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희생하는 이들을 막지 못한다”며 트럼프를 무시하는 감정 섞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오바마는 미국인보다도 적을 우선시한다. 대통령이 되면 나는 항상 미국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또 “오바마가 총기 난사범보다 나에게 더 화내고 있다”는 조롱도 빼놓지 않았다.

악어, 어린이 물고가

올랜도 디즈니월드에서 악어가 2세 남자 아이를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사고도 발생했다. CNN에 따르면 15일 오후 9시 20분쯤 디즈니월드 리조트 내 인공 호수 세븐시스 라군에서 2m가 넘는 악어가 2세 남아를 물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옆에 있던 아기의 아버지가 물속까지 들어가 구출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수색대는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아기를 찾지 못했다.

올랜도=채병건 특파원, 홍주희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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