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남북대화서 무엇을 노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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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분단 40년만에 남북한의 인적 및 문화적 왕래가 비록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마침내 실현됐다.
남북이산가족의 고향방문단, 그리고 예술공연단이 각각 서울과 평양을 방문함으로써 분단사에 획기적인 새 장을 연 것이다. 민족적으로 경하해야 할 이 역사적 전환점에서 남북관계의 현재를 점검해보고 그 미래를 전망하기로 한다.
제5공화국의 수립이후 우리 정부는 「남북최고당국자 회담」 안및「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을 비롯한 일련의 참신한 대북제의들을 통해 조국의 통일문제에 과감하게 접근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제의들을 일관되게 외면하다가 지난해 가을부터 남북대화에 응해오고 있다. 그러면 북한이 이처럼 태도를 바꾼 배경에는 어떤 요인들이 작용했는가.
첫째, 중공의 변화다. 중공은 특히 82년 10월의 제12차 당대회 이후 실용주의 노선을 강화하여 대내적으로 현대화정책을 추진하고, 대외적으로 친서방및 개방정책을 추구하면서,북한에 대해 대남군사모험주의를 버리고 남북대화에 응할것을 설득해왔다.
북한이 대남군사모험주의의 길을 걸어 마침내 한반도에서 「제2의 6 25동란」 이 발생하는 경우 자신이 불가피하게 한국전쟁에 개입하게 되어 미국및 일본과의 협력관계가 깨어지고, 자신의 현대화정책이 늦추어지게 될것이라는 계산은 중공으로 하여금 북한지도층에 남북대화를 강력히 설득하게 만들었다.
둘째, 83년 10월 랭군에서 발생했던 한국고위층에 대한 폭탄테러사건이다. 엄정중립의 버마정부가 이 사건이 북한당국에 의해 저질러졌음을 발표하고 북한과 단교하자 국제사회에서의 북한의 위신은 크게 떨어졌다. 중공마저 버마정부의 발표문 전문을 당기관지 인민일보에 게재함으로써 북한의 테러리즘에 대한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므로 북한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극복할 수 있는 외교적 방안을 찾게 되었고, 그것이 84년1월 이후 「한국-북한-미국의 3자회담」안 제의 공세로 구체화됐다. 그런데 여기서 지적해야 할 점은 3자회담안이 2중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즉 북한과 미국이 먼저 회담을 열어 사실상 주한미군의 철수문제를 협상하고 그 협상과정에서 한국대표의 참가문제에 합의한다는 내용으로, 이것은 주한미군의 철수를 촉진시켜 한국의 안보체제를 약화시키고, 또 한국정부의 국제적 지위를 격하시켜 결과적으로 자신이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인 듯한 인상을 국제적으로 조성하려는 속셈을 담고있다.
이 점을 충분히 인식하기 때문에 미국은 3자회담안을 거부하고 남북대화의 선행을 권고해 왔다. 남배대화가 상당한 수준으로까지 진전되어 한반도에 평화구조가 건설될 전망이 뚜렷할 때 비로소 미국은 북한과의 회담에 응할 수 있다는 뜻을 표시해 왔다.
세째, 북한사회가 안고있는 문제들로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김정일체제의 안정화 문제와 그리고 경제절 어려움의 극복문제다.
이 두 문제는 동시적으로 서로 얽혀 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김일성이 장남 김정일을 자신의 후계자로 등장시킨 정치적 작업은 73년부터 시작되어 많은 우여곡절 끝에 80년10월 노동당 제6차대회에서 매듭지어졌다.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북한은사실상 김일성부자의 「공동지배체제」 아래 놓여 있다.
철저한 통제아래, 그리고 강압과 교조주입의 복합기제를 통해 조성된 김일성부자에 대한 개인숭배에 의해 이 왕조적 세습체제는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빈센트 브란트」 박사가 인류학적 분석을 통해 결론짓고 있듯이 북한주민들의 사기는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있으며, 이러한 사기저하가 마침내 봉건적 권력세습에 대한 불만의 확산으로 연결될 가능성마저 없지않다.
여기에 경제적 곤경이 얽혀있다. 북한의 방송보도를 매일매일 면밀히 청취한 중립적인 런던의 경제정보분석연구소에 따르면 북한당국은 최근 2∼3년동안 물질적댓가를 지나치게 기대하는 노동자들의 정신상태를 혁명적 봉사자세로 바꿔줄 「사상교육」 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상교육」의 성공없이는 경제적어려움이 극복될수 없다는 점을 주입시키고 있다. 이처럼「사상교육」의 강화와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 비록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서방 (특히 일본)으로부터 자본및 기술의 도입을 꾀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내부의 복잡한 사정이 북한으로 하여금 남북대화의 길을 택하게 만들었다. 풀어말해 첫째, 김정일의 권력세습과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주민의 불만표출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돌파구를 남북대화에서 찾고자 한다. 둘째,북한이 자신의 경제적어려움을 덜어줄 협력자로 간주하고 접근을 시도한 서방 (특히일본) 이 북한에 대해 남북대화를 통한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선행되어야 자신들이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증대시킬수 있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셋째, 한국 내정에 대한 북한의 자기나름의 인식이다. 북한의 지도층이 갖고 있는 교조주의적이며 공산혁명적 시각에서 볼 때 한국은 그 내부적 갈등들로 말미암아 「파국」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남북대화라는 기제 (메커니즘)를 잘 활용하면 한국의 내부적 갈등상황을 「남조선혁명」의 방향으로 유도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이상에서 남북대화에 임하는 북한의 입장을 개괄했거니와 여기서 종합적으로 지적돼야 할 점은 남북대화에 대한 북한의 인식은 우리의 그것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남북대화를 1차적으로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데 반해, 북한은 남북대화를 북한공산집단에 대한, 그리고 통일문제에 대한 한국민의 환상을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여긴다. 또 남북대화가 상당한 수준으로 진전된듯한 인상을 국제적으로 심어주어 『그렇다면 미군의 한국주둔이 필요없지 않느냐』 라는 분위기를 조성해 결과적으로 주한미군의 절수를 촉진시키려는 수단으로 쓰고있다.
북한은 남북한관계를 75년 이전의 남북베트남관계로 전환시키려 한다. 즉 한반도상황을 공산화통일 이전의 베트남상황으로 유도하려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이 84년5월 김일성의 모스크바방문을 계기로 소련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해 나가고있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한반도내외적 환경에서 우리 한국이 추구해야할 대북정책과제는 1차적으로 남북한의 「관계정상화」다.
남북불가침협정의 체결, 남북연락대표부의 서울 평양 교환 상주, 남북군비경쟁의 상호지양, 남북한 사이의 교류와 협력의 증대 등등을 골격으로 하는 잠정적인 남북한기본관계협정의 체결을 통해 남북한관계를 동서독관계로 전환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한반도의 분단구조 그 자체를 안정시켜야한다. 「불안정형」인 오늘날의 한반도 분단을 「안정형」 으로 정착시킬때 비로소 민족의 통일을 향한 터전이 마련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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