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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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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금융회사에서 받은 대출을 14일 이내에 중도상환수수료 없이 철회할 수 있는 제도가 이르면 10월부터 시행된다. 개인이 받은 4000만원 이하의 신용대출이나 2억원 이하 담보대출이 대상이다.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는 은행권 협의를 거쳐 이러한 내용의 ‘대출계약 철회권’ 시행 방안을 마련했다고 14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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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받은 대출을 철회하려면 14일 안에 철회의사를 금융회사에 밝히고 원금과 해당 날짜만큼의 이자를 갚아야 한다. 이때 14일의 첫 번째 날은 계약서류를 발급 받았거나 대출금을 받은 날 중 나중 날짜로 정한다. 다만 담보대출은 은행이 낸 근저당설정 관련 수수료와 세금을 소비자가 부담해야 한다. 보통 2억원의 아파트 담보대출이면 이 비용이 150만원 안팎이다. 현재는 2억원의 담보대출을 대출 초기에 중도상환하면 금융회사에 내야하는 중도상환수수료가 200만~300만원이다. 대출계약 철회권이 시행되면 소비자의 부담이 절반 수준으로 줄게 된다.

중도수수료 없이 14일 안에 가능
이르면 10월 시행 … 이자는 내야
대출기록 안 남아 신용엔 영향 없어
“급전 필요할 때 악용 우려” 지적도

일단 대출계약이 철회되면 대출기록은 금융회사나 개인신용평가조회사(CB), 신용정보원에서 삭제된다. 아예 처음부터 대출이 없었던 게 되기 때문에 신용등급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은행연합회 윤성은 여신제도부장은 “마치 방문 판매 제품을 취소·환불하는 것처럼 대출도 철회할 수 있게 된다”며 “개인고객이 정보부족으로 인해 대출 금리 면에서 손해를 보지 않도록 보호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A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나서 비교해보니 B은행 금리가 더 싸다면 대출계약을 철회하고 갈아타는 것을 고려할 만 하다. 기준금리 인하와 같은 시장 급변으로 단기간에 대출금리가 뚝 떨어진 경우에도 이용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16일부터 금리를 0.2%포인트 인하키로 한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을 예로 들어보자. 금리 인하로 인해 2억원을 30년 만기로 대출받는 사람의 총 이자부담은 768만원 줄어든다(원리금균등분할 상환시 1억161만원→9393만원). 만약 며칠 전에 이미 대출을 받은 소비자가 인하된 금리로 갈아타려면 현재는 중도상환수수료 240만원(원금의 1.2%)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대출계약 철회권이 시행되는 4분기 이후에는 이런 경우 150만원 정도만 내면 갈아타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1억원 이하의 담보대출은 철회권 행사로 인한 소비자 이익이 크지 않을 수 있다. 1억원의 담보대출 철회를 위해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100만원 정도여서 중도상환수수료(100만~150만원)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또 모든 금융회사가 4분기부터 이를 도입하는 건 아니다. 우선 금융당국이 관할하는 은행과 보험·캐피탈·저축은행·신협·주택금융공사가 대상이다.

일부에서는 제도를 악용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급전이 필요할 때 은행에서 낮은 이자로 거액을 대출받은 뒤 14일 내에 이를 철회하면 그만이어서다. 특히 신용대출은 철회해도 소비자가 물어야할 부대비용이 없고 대출기록도 삭제돼 블랙컨슈머가 악용할 우려가 크다. 비슷한 제도가 있는 유럽과 미국, 캐나다는 대출계약을 맺은 뒤 대출금이 입금되기 전인 일주일 정도의 기간에만 철회할 수 있게 돼있다.

금융감독원 김용태 은행제도팀장은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대출이 신속하게 나가다 보니 상황이 좀 다르다”며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어서 앞으로 모니터링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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