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속 국회…출구 암중모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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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2대국회구성후 처음맞는 정기국회가 20일 열렸으나 「예상대로」벽두부터 진통을 겪고 있다.
고대앞 사건과 관련해 신민당의 박찬종·조순형의원이 19일 전격 기소됨으로써 20일 개회식이후의 의사일정에 대해 여야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 정기국회는 개회와 동시에 공전사태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여야총무들의 회담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이재형국회의장이 각당 수뇌들과 잇달아 접촉, 대표회담을 모색하는등 수습에 나서고 있으나 「정치인의 학원개입 불용」 이라는 민정당의 방침과 「국회의원의 정당한 직무수행」이라는 신민당의 주장이 한치도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않고 있으며 따라서 상당기간 국회는 제대로 운영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번 국회의 「주전장」이 될 것으로 여겨온 개헌문제를 둘러싼 공방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초입의 예비전에서 맞붙은 여야가 서로 기합을 잃지 않으려고 잔뜩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이같은 강경대결상이 잘못 삐끗하면 전면대결의 양상으로 확전될 가능성도 전혀 없진않다. 다만 아직 민정-신민 양측이 두의원 기소문제로 국회를 전부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는것 같지는 않다. 때문에 양측은 소강상태를 거친후 대표회담을 비롯한 고위회담을 통해 정치절충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의원의 기소로 문제가 사법적 영역에까지 연관됨으로써 정치적 타결의 폭이 까다롭게 제한되고 정당의 정치력이제대로 발의되기 어렵게 되어있는게 사실이다.
설령 두의원문제가 국회운영과 분리 처리되어 국회가 정상화되더라도 이문제가 불씨로 남아 국회진행과정에 영향을 끼칠것이며 예컨대 여당측이 학원안정법을 다시들고 나와 국회전체를 소용돌이속으로 밀어넣는 도화선구실을 할지도 모른다.
정부 여당은 학원사태, 특히 학원과 재야의 연대를 최대의 난제로 여기고 있어 이번 국회의 주쟁점을 개헌보다는 오히려 학원문제에 두려는 경향을 보이고있다. 그러나 야당측이 이번 국회의 중심이슈를 개헌으로 잡고있어 결국 주전선은 개헌문제족으로 옮겨가지 않을까 보인다.
이미 신민당은 내년말을 시한으로 잡은 그들의 이른바 「민주화 일정」가운데 이번국회를 「개헌에 대한 여야의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시점으로 설정, 몇차례에 걸쳐 이를 천명한 바 있다. 말하자면 이번 정기국회는 신민당의 「개헌장정」의 첫단계이며 만약 여기서 아무 성과를 거두지못하면 그들의 「순법투쟁」이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물론 이에대한 민정당의 호헌의지 또한 단호하다. 「개헌보다는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논리로 야당의 개헌공세에 대비하는한편 내년 상반기까지의 전반적인 정치일정과의 연관하에서 야권의 구도에 대응할 카드를 마련하고 있다.
따라서 두의원 기소사태로 인한 제1파를 넘어서면 더 파고높은 제2의 개헌파가 밀어닥칠 판이다.
이같은 야당측 작전에 대해 민정당측은 「제한대화」라는 강 온 양면작전으로 밀어불일 작정이다. 초반부터 국회가 뒤뚱거리기 시작했고 예산안등 각종 법안의 순조로운 타결이 난망시되는 상황에서는 국회의 단독운영도 필요할 경우에는 언제든지 하겠다는생각이다.
박·조의원의 문제나 야당지명국회부의장후보의 기피에서 보듯 「신상」문제가 곳곳에서 복병으로 튀어나올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으며 광주사태, 김대중씨사면복권, 언론문제,사법부의 독립성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여야의 대립을 첨예화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초반부터 두의원 기소문제로 여야가 감정섞인 대결상태를 보이는 판국이어서 개헌등 치열한 정치공세로 판세가 가열되면 정국은 금방 발화점까지 달아오를 우려도 없지 않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이번 정기국회의 전도를 비관적인것으로 내다보고, 이번국회의 난조가 결국 내년봄의 막다른 정국으로 치닫게 될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암울한 결론을 내리고있다.
그러나 이번 국회가 여야가 궁극적으로 구상하고 있는 정치일정상에서 반드시 원내활동의 데드라인이라고만 여기지 않고있다는 요인들을 여러군데에서 찾아볼수 있다.
우선 외적인 변수로서 야당측이 지금처럼 흐트러진 당내계파간의 갈등과 이견을 간직한채 선뜻 「전면전」을 시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수 있다.
이미 야권내에 일고있는 몇갈래 원심현상이 그냥봐넘길수없는 심상찮은 현상으로 등장하고있고 개헌논의만 하더라도 비록 대통령직선제가 대세이기는 하나 공공연하게 등장하고 있는 내각책임제주강도 결코 무시하고 말아버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는 아니다. 「직선제」개헌주장만 고집하는것은 개헌논의의 폭을 좁힐뿐이라는 지적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무엇보다도 주목해야할 것은 야권이 내년을 비록 개헌시한으로 설정하고 있긴해도 실제는 정권교체시기를 88년으로 보고있다는 점이다.
야당측이 임기전 퇴진을 몇차례 「주장」은 했어도 그 실현을 위한 결연한 의지표명이 있은적이 없었고 최근 김영삼씨는 미국에서 임기전 퇴진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개헌이나 정권수임을 위한 총공세라는 것이 실감있게 느껴지지 않게 되어있는 것이다.
결국 여야는 서로 대화의 여유를 남겨두고 있는 셈이며 그런 틈사이로 막후협상이 전개될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정기국회가 과열상태에서 개막되고 또 곳곳에 함정이 도사린 살얼음판처럼 긴장속에 부침하기는 하겠지만 그런 표면현상들만 보고 곧 전면적인 파국의 시작이라고만 예단해버려서는 안될것같다. <김영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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