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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총격테러 '무슬림 혐오' 트럼프에 힘 실리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IS(이슬람국가) 추종자'에 의한 미국 올랜도 테러사건의 후폭풍이 미국을 뒤흔들고 있다.

당장 미 연방수사국(FBI)의 허술한 감시태세가 도마 위에 올랐다. FBI는 2013년부터 용의자 오마르 마틴을 '테러 감시대상' 명단에 올리고 세 번이나 직접 심문을 했다. 그럼에도 별다른 이상징후를 발견하지 못한 채 방치하다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 눈뜨고 당한 셈이다.

마틴은 2013년 직장 동료에게 "나와 IS가 연계돼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수사당국에 포착됐다. 이후 FBI는 관련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마틴을 불러 두 차례 심문했다. 하지만 결국 발언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 실패했다.

이듬해인 2014년에도 마틴은 FBI의 심문을 받았다. 시리아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일으킨 미국인 모너 무함마드 아부살라가 플로리다에 살던 마틴과 교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시 테러와의 연계 가능성을 추궁한 것이다. 이때도 결론은 "두 사람의 만남 자체가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

CNN은 "이번 사건이 IS의 직접 지시에 의한 것인지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세번이나 심문을 할 정도로 테러 용의선상에 올라 있는 인물의 움직임을 놓쳤다는 건 명백한 FBI의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더 힐'도 "미국 내 테러 대응체계에 중대한 구멍을 드러낸 데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할지 정치적 논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은 미 대선 정국의 새로운 쟁점으로도 급부상하고 있다.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역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이미 경선과정에서 "테러위험이 있는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일시 금지해야 한다"등 강경한 테러 대응을 주장해온 트럼프로선 정치적 호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멕시코계 판사에 대한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지지율이 급락하던 상황에서 반전을 기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로 삼으려 한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방점을 '민주당 정권의 대테러정책 실패'로 몰아가고 있다. 클린턴 후보의 비리 의혹에 초점을 맞춘 회견을 예정했던 13일 일정도 테러와 이민문제 등 국가안보 관련 문제에 집중하기로 변경했다.

트럼프는 이날 트위터에서 "(급진 이슬람 테러주의자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옳았다는) 축하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내 생각이 옳았음을 입증한다"고 강조했다. 외교안보분야 자문을 담당하는 왈리드 파레스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이제 미 국민은 이런 테러가 미국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걱정한다"며 "문제는 이론이 아니라 피로 물들어버린 현실에 대한 의문"이라고 사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반면 클린턴은 테러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총기규제'와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을 겨냥한 증오범죄'쪽으로 몰고가는 분위기다. 지나치게 테러가 부각될 경우 자칫하다간 트럼프만 득을 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클린턴은 이날 트위터에 "LGBT 공동체에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수백만 명의 지지자가 있음을 알기 바란다. 나도 그들 중의 한 명"이라고 썼다. 오바마 대통령도 회견에서 "이번 사건은 학교·교회·영화관·나이트클럽 등에서 쓰일 수 있는 총기를 얼마나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며 총기규제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번 사건이 오는 11월 대선의 향배를 결정지을 핵심 지역인 플로리다에서 일어난 점에 주목하는 분석도 있다.

플로리다는 최근 4번의 대선에서 민주·공화가 2대 2로 승부를 나눈 대표적 경합주(swing state)다. 경합주 중에서 가장 많은 29명의 선거인단이 걸려있어 최대 승부처로 꼽힌다. 지난 7일 발표된 PPP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45%(트럼프) 대 44%(클린턴)로 사실상 동률이다.

문제는 이번 사건을 겪은 플로리다의 표심이 급격히 보수성향으로 기울 가능성이다. 그 경우 트럼프가 크게 유리해질 수 있다.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마코 루비오 플로리다주 상원의원이 12일 TV에 나와 "우리는 그동안 직면하지 못한 새로운 테러와의 전쟁에 돌입했다. 이는 이슬람 과격주의에서 촉발된 것"이라 단정한 것도 트럼프로의 표 결집을 겨냥한 발언이란 분석이다.

한편 워싱턴DC와 뉴욕 등 주요 도시들은 이슬람 동조세력의 추가 테러가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 이날 경계태세 수위를 올렸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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