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들이 30년 된 침낭을 쓰게 된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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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간부들과 군납업체들이 침낭 도입 사업을 둘러싸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면서 결국 신형 침낭을 도입하지 못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 적발됐다. 이로 인해 군 장병들은 30년이 넘은 구형 침낭을 써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게 됐다.

1일 감사원에 따르면, 국방부는 2010년 11월 침낭 개발업체인 A사로부터 “군이 사용중인 개인용 침낭은 1986년 개발된 것으로, 무겁고 보온력도 떨어진다”며 새로운 침낭 연구개발을 제안받았다. 신규 침낭교체 사업은 1,017억원을 투입해 군용 침낭 37만개를 교체하는 사업. 당시 군이 사용하고 있는 침낭은 A사의 경쟁업체가 개발한 제품이었다. 시중에는 이미 성능이 우수한 침낭이 유통되고 있고 군 야전 간부들도 민간용품을 선호하는데도 국방부는 A사의 청탁을 받아 굳이 신형 침낭 개발을 추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A사는 모 예비역 장성에게 자신이 만든 침낭이 채택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3,750만원을 줬다. 이 예비역 장성은 2011년 8월 자신의 후배인 B대령과 A사 대표의 저녁식사 자리를 주선했다. 이후 B대령은 침낭 업무를 무리하게 자신의 업무로 가져온 뒤 본격적으로 신형 침낭을 개발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경쟁사인 C사가 가만 있지 않았다. C사는 2011년 11월 업무 담당자가 B대령에서 D대령으로 바뀌자 또다른 예비역 장성을 통해 D대령에게 A사를 비방하는 허위문서를 전달했다.

D대령은 또 다른 상관들로부터 A사의 침낭에 불리한 기준을 적용하라는 지시를 받고 “A사의 침낭은 성능이 낮다”고 허위보고를 했다. ‘영하 20도에서 중량 2.5㎏’라는 개발목표를 달성했는데도 ‘영하 48도’로 기준을 돌연 강화해 개발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보고한 것이다.

D대령은 또 자신의 부하직원에게 국장급 심의회에서 “A사의 침낭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결국 A사의 침낭 개발계획은 최종 부결됐고, C사는 목적(?)을 달성하게 됐다. 이후 군은 2015년 7월까지 3차례에 걸쳐 E사로부터 61억원 어치의 구형 침낭을 납품받았다. A사와 C사의 이전투구 속에 어부지리를 얻은 E사의 제품은 30년 전에 개발된 구형 침낭이었다.

감사결과, A사는 침낭 외에도 천막과 배낭 연구개발사업에도 손을 뻗친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 4월 개인전투용 천막과 전투용 배낭 연구개발 사업자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육군 업무 담당자 2명에서 317만원을 준 사실도 적발됐다. A사는 실제 2014년 7월 28억원의 천막 납품계약과 88억여원의 배낭 납품계약을 체결했다.

감사원은 이 같은 감사결과를 토대로 전ㆍ현직 장성 6명, 대령 2명, 공무원 2명, 업체 관계자 2명 등 총 12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 요청하거나 수사참고 자료로 제공했다.

차세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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