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에 타율 4할 도전, 나이 잊은 이치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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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인생은 42세부터 시작이다(人生は 42 歲から始まるんやて).’

| 티셔츠에 ‘인생은 42세부터’ 새겨
대기록 위해 마이애미와 헐값 계약
40개 더 치면 MLB 통산 3000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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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의 키는 1m80㎝, 체중은 79㎏이다. 야구선수로는 크지않은 체구인 이치로는 메이저리그에서 안타를 많이 칠 수 있도록 타격자세를 바꿨다. [마이애미 AP=뉴시스]

메이저리그(MLB) 마이애미 말린스의 일본인 타자 스즈키 이치로(43)가 티셔츠에 새긴 문구다. 이치로는 지난 2월 스프링캠프에 이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출퇴근을 했다. ‘부상 따위는 없다’ ‘어깨도 강하다’ ‘다리도 빠른 편’ 등 문구는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1973년 10월생인 이치로는 올해 만 42세다. 야구 선수로는 황혼기인데도 그는 여전히 잘 달리고, 잘 친다. 티셔츠에 새긴 문구에 대해 “해석은 자유”라고 큰소리 치더니 시즌이 개막하자마자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치로는 지난 24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말린스파크에서 열린 탬파베이 레이스와 경기에서 5타수 4안타·1타점을 기록했다. 지난 22일 워싱턴 내셔널스전 이후 2경기 만에 다시 4안타를 때렸다. 시즌 타율 0.385(65타수25안타)에 최근 7경기 타율은 0.571를 기록 중이다. 이치로는 2001년부터 10년간 200안타 이상을 기록했다. 2004년에는 MLB 최다안타 신기록인 262안타를 때렸다.

그러나 기계처럼 안타를 때리던 이치로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진 못했다.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하면서 MLB에 데뷔한 이치로는 11년 만인 2012년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 됐다. 2011년엔 미국 진출 이후 처음으로 2할대(0.275) 타율에 머물렀고, 2012년 초반에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결국 시즌 중반 쫓기듯 시애틀을 떠나야 했다.

2014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이치로는 한동안 새로운 팀을 찾지 못했다. 그가 1992년부터 9년 동안 뛰었던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에서는 “이제 집으로 돌아오라”며 복귀를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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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치로는 미국에 남아 2015년 1월 마이애미와 1년 계약을 맺었다. 양키스에서 받던 연봉(650만 달러·약 77억원)의 3분의1도 안되는 200만 달러(약 24억원)에 사인을 했다. 마이애미의 외야는 이미 주전이 모두 결정된 상태였지만 그는 “MLB 통산 3000안타 기록 달성이 남아있다”며 도전을 계속했다.

지난해 이치로는 지안카를로 스탠턴(27) 등 주전 외야수가 부상으로 빠진 틈을 타 153경기에 나섰다. 타율은 0.229(398타수111안타)에 그쳤다. 그럼에도 마이애미는 “이치로가 철저한 자기 관리로 젊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됐다”며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재계약을 제안했다. 통산 3000안타까지 안타 65개가 남은 상황이었다. 이치로는 기존에 사용하던 방망이와 스파이크를 바꾸는 등 변화를 주며 야심차게 새 시즌을 준비했다.

| 15년간 몸무게 1㎏도 안 변하게 관리
“마흔 넘으면 물러나는 건 괴로운 일”
51세까지 뛰려고 등번호도 5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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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스프링캠프서 ‘인생은 42세부터 시작’이란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이치로. [유튜브 캡처]

이치로의 3000안타 달성 가능성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 장훈은 “이치로는 제4의 외야수이기 때문에 올시즌 65안타를 때리기 어렵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세이버매트릭스(야구 통계)의 대부인 빌 제임스는 “그가 올해 3000안타를 달성할 확률은 97%”라고 전망했다.

이치로가 타석에 설 기회는 많지 않다. 팀이 45경기를 치르는 동안 그가 선발로 나선 건 11차례에 불과하다. 그러나 방망이는 여전히 날카롭다. 올 시즌 25개의 안타를 추가한 그는 25일 현재 2960안타를 기록 중이다. 앞으로 40개만 추가하면 통산 3000안타 기록을 달성한다. 이미 도루 500개를 채운 이치로는 역대 7번째로 3000안타-500도루 기록을 눈 앞에 뒀다. 이치로가 3000안타를 채우면 미·일 통산 기록은 4278안타가 된다. 피트 로즈의 4256개를 넘어서 ‘세계에서 가장 안타를 많이 친 선수’가 될 수 있다.

지난 2월 미국의 ‘뉴스데이’는 뉴욕 양키스 시절 이치로의 동료였던 카를로스 벨트란(34)이 들려준 이야기를 소개했다. 벨트란이 이치로에게 “미국에 온 뒤 체중이 얼마나 늘었냐”고 물었더니 이치로는 “1파운드(454g) 정도 늘었다”고 대답했다는 내용이다. 이치로는 매일 아침 아내가 만든 카레를 먹고 하루를 시작한다. 움직이는 동선 하나하나가 시나리오처럼 정교하게 정해져 있다. 42세의 나이에도 그가 꾸준히 안타를 때려내는 비결이다.

이치로는 마이애미에 입단하면서 “야구선수가 마흔이 넘어서면 보통 현역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점이 괴로운 일이다. 25세에도 40세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 반대로 보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치로는 등번호 ‘51’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선다. “51세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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