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살생물질 성분 공개도 의무화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환경부가 생활화학제품이 함유하고 있는 살생물질(미생물·곤충 등을 제거하는 화학물질)을 전수조사해 사용 실태를 점검하고 안전성 검증에 나서기로 했다. 올 상반기에 방향제·탈취제 등 15종의 위해(危害) 우려 제품을 제조·수입하는 8000여 기업으로부터 함유된 살생물질의 성분 등을 제출받아 하반기에 위해성 평가를 한다니 전에 없던 대규모 작업이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이제야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내년에는 살생물질이 들었지만 그동안 위해 우려 제품으로 관리되지 않았던 생활화학제품, 에어컨·공기청정기·항균필터 등 공산품과 전기용품, 사업장에서 이용되는 살생제품과 제품의 용기·포장 등의 살생물질까지 조사를 확대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전체 생활화학제품을 사각지대 없이 낱낱이 살피고 철저하게 검증해 안전성이 확보되지 못한 물질과 제품은 가차없이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살생물질을 포함한 생활화학제품 전체 성분의 정보공개도 의무화해야 한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위해성도 모른 채 생활화학제품을 사용해야 했다.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도 이런 허술한 제도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전체 성분 공개가 의무화되면 기업들은 사전에 자체적으로 엄격한 안전검증을 거쳐 제품을 출시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시민단체도 해당 성분과 관련한 최신 연구결과나 위해 정보를 실시간으로 입수해 시중 판매제품을 적극적으로 감시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위해 화학제품은 발붙일 땅을 잃게 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생활화학제품 사전허가제도의 도입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EU)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이 제도는 안전성을 미리 입증한 제품만 시장에 낼 수 있도록 하는 엄격한 소비자 안전·건강 보호제도다. 이렇게 하면 기업들은 개발·제조·판매 단계마다 소비자의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 순위에 둘 수밖에 없다. 앞으로 더 많은 소를 잃지 않으려면 정부는 이제라도 외양간을 고치는 심정으로 소비자 보호 종합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