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수익 나빠졌다고 수수료부터 올리는 은행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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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은행들이 송금과 자동화기기 이용 요금 등 각종 수수료를 잇따라 올리고 있다. 시작은 야금야금 눈치보기 식이었다. 지난달 신한은행은 외화 송금 수수료의 일부만 인상했다. 곧 KEB하나은행이 뒤를 따랐다. 지난 13일부터 자동화기기를 이용한 타행 송금 수수료를 100~200원 올렸다. 씨티와 SC제일은행도 수수료를 올렸고, 우리은행은 인상을 검토 중이다.

시장에서 별말이 없는 듯하자 본격 인상이 시작됐다. KB국민은행은 다음달 1일부터 거의 모든 수수료를 일제히 큰 폭으로 올리기로 했다. 타행 송금 수수료는 최대 1500원(60%), 통장·증서 재발급이나 각종 증명서 발급 수수료는 1000원(50%)을 올리기로 했다. 명의 변경 수수료는 5000원(100%), 자동화기기 수수료도 다음달 20일부터 100~200원 올린다. 지금까지 수수료를 받지 않던 인터넷이나 모바일 해외 송금에도 수수료를 물리기로 했다.

은행들이 일제히 수수료 인상에 나선 것은 수익성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1%대의 초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예금과 대출 차이로 생기는 수익인 예대마진이 크게 줄었다. 감독 당국의 규제로 수수료가 5년째 동결돼 원가 부담이 커졌다는 것도 이유다.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16개 시중은행은 지난해 수수료로만 5조원 가까운 순익을 거뒀다. 그래 놓고 원가 부담 운운하는 건 낯 간지럽다. 차라리 수수료 인상으로 고객 호주머니 터는 게 가장 쉽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밝히는 게 나을 것이다.

수수료 인상은 은행 수익 개선의 해법이 될 수 없다. 수익의 90%를 예대마진에만 의존하는 천수답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낮은 생산성과 평균 1억원에 육박하는 고임금 구조를 놔두고는 백약이 무효다. 은행들이 이런 자구 노력은 하지 않고 손쉬운 수수료 인상에 기대려고 하니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수수료 규제를 풀어준 감독 당국도 책임이 크다. 수수료 일제 인상이 타당한지, 담합 소지는 없는지, 원가를 투명하게 따져 과도한 인상을 막아야 할 것이다. 소비자는 봉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