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상시 청문회법, 낡은 청문회 문화부터 개선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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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9대 국회가 통과시킨 ‘상시 청문회법’에 대해 부작용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는 이미 정기 국정감사와 특정 현안에 대한 국정조사에서 청문회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행정부·사법부의 고위 공무원 임명 때 인사 청문회도 실시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365일 언제라도 정책 청문회를 열 수 있게 국회법을 개정했으니 국회와 국회의원의 무소불위 권력만 더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이해 못할 반응은 아니다. 지금까지 국감과 국정조사에서 국회의원들이 보여준 막말, 호통, 비난 일변도의 무법무도한 태도나 인사 청문회를 대통령과 행정부를 굴복시키고 길들이는 행사쯤으로 생각하는 풍토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이 장관을 불러다 놓고 “어디서 싱글싱글 웃고…반성하고 앉아 있으란 말이에요”라든가 “기억력이 그 정도밖에 안됩니까. 아니 한글 모르세요?”라고 면박을 일삼는 언행을 보면 국민들마저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국회의 갑질 행태에 장차관이 불려 나오면 그 밑에 국장·과장까지 줄줄이 끌려와 장기간 행정공백이 벌어지는 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재계 인사를 증인으로 채택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거래가 오가거나, 증언대에서 업무와 관계없이 인간적 모욕을 주기도 했다. 하루 종일 수많은 증인들을 국회에서 기다리게 해놓고 그냥 돌려보내는 일도 흔했다.

이런 관행과 태도를 바꾸어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이 법을 발의하고 본회의 처리를 주도한 정의화 의장도 어제 “정책 청문회를 활성화시키면서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는 국정감사는 하지 말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는 헌법 61조에 명시된 국회 활동이다. 따라서 현행 헌법상 국감 자체를 못하게 할 수는 없다. 다만 하위 법률인 ‘국정감사와 조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국감을 9월 정기국회 회기 중 30일간 정해놓은 특별기간에 원내대표들이 지휘하는 특별행사로부터 해방시켜 연중 어느 때나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진행할 수 있도록 실무 국감으로 과감하게 전환하는 게 좋겠다.

다만 행정부·재계 등에서 나오는 상시 청문회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별개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행정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행사되어선 곤란하다. 청문회는 그 운영과 문화의 후진성이 문제였을 뿐 지난 수십 년간 국감, 국정조사, 상임위의 정상적 활동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번에 통과된 상시 청문회법은 국회법 65조 1항, 상임위에서 청문회의 개최 요건을 ‘중요한 안건’에서 ‘소관 현안’으로 확대한 것뿐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오히려 더 큰 역풍이 불지 모른다. 그러나 상시 청문회의 도입에 따른 부작용과 우리 사회의 우려도 있는 게 현실이다. 이를 잠재우려면 청문회를 대하는 국회의원의 태도와 정당의 접근 자세, 제도적 보완부터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