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가족 생긴 홀몸 노인, 유기견이 새 룸메이트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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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분양사업을 통해 바둑이와 가족이 된 김점순(85)씨.

지난달 28일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의 한 주택. 강아지 한 마리가 집으로 들어오자 김점순(85·여)씨가 환하게 웃었다. 생후 2개월 된 강아지는 김씨를 보자마자 품에 안겼다. 김씨는 강아지에게 ‘바둑이’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는 “가족이 생긴 건 30년 만에 처음이다. 고요했던 집에 활기가 넘쳐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속초 애견협회·정신건강증진센터
독거노인에게 반려동물 분양 사업
외로움 잊게 하고 생활에 새 활력
속초시도 하반기부터 예산 지원

김씨와 바둑이의 만남은 속초시와 한국애견협회 속초지회, 속초시정신건강증진센터가 힘을 모아 성사됐다. 세 기관은 지난달 20일 속초시농업기술센터에서 어르신 반려동물 입양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외로운 노인에게 새 가족을, 유기견은 자신을 아껴줄 주인을 만나게 해주자는 취지였다.

각 기관들은 상담을 통해 지난달 27일 속초시 조양동 한 야산에서 어미와 함께 발견된 바둑이를 김씨 집으로 보냈다. 김씨는 강원도 유기견 분양 1호 독거노인이 됐다. 속초시 대포동에서 혼자 사는 박태순(82·여)씨도 마당에서 키울 수 있는 반려견을 분양받았다. 지난해 10월 속초시 교동에서 발견된 유기견으로 애견협회 측이 박씨의 요청에 따라 유기동물보호소에서 가장 얌전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강아지를 골랐다고 한다.

매년 우리나라에서 버려지는 유기동물은 8만1147마리(2014년 기준). 이 중 22.7%(1만8436마리)가 ‘썩시콜린(Succicholin)’ 등 주사를 맞고 안락사한다. 이에 따른 비용만 104억원에 달한다. 한국애견협회 속초지회 김성환 기획이사는 “안락사 위기에 처한 동물을 구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사업을 추진하는 중요한 이유”이라고 말했다.

현재 속초의 보호소에선 유기동물 43마리를 보호하고 있다. 적정 수용규모는 50마리로 유기동물이 한꺼번에 들어오면 안락사가 불가피하다. 현행 동물보호법상 유기동물 보호기관에 들어온 때를 기준으로 10일 이후 부터는 안락사시킬 수 있다. 속초의 경우 지난 3년(2013~2015년)간 1117마리의 유기동물이 포획됐는데 이 중 124마리가 안락사하거나 자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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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시는 반려견 입양사업이 노인자살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정신건강증진센터가 지난해 노인 2356명을 대상으로 마음건강 전수 조사를 한 결과 자살을 생각했던 독거노인이 209명(8.9%), 시도한 적이 있는 독거노인이 84명(3.5%)으로 집계됐다.

정신건강증진센터 최종구 팀장은 “독거노인 대부분이 외로움을 호소하는 데 반려견과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며 “상담·관리 중인 노인들에게도 유기견 분양을 권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애견협회는 유기견을 분양받은 노인들에게 사료와 미용, 병원 진료비 등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속초시는 하반기에 300만원의 예산을 확보, 사업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이병선 속초시장은 “노인과 동물복지를 동시에 해결하는 차원에서 분양사업을 시작했다”며 “공무원과 애견 전문가들이 수시로 방문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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