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은 외국…무슨 통일을 하나"|본사 김동수 본주재특파원 동독방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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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본사 서독 본주재 김동수특파원은 6월1일부터 7일까지 동베를린에서 열린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를 취재하기 위해 한국대표단과 함께 동독에 입국, 이 기간동안 동베를린을 비롯, 무역박람회로 유명한 동독 제2의 도시 라이프치히, 공업도시 드레스덴 등지도 방문했다. 다음은 김특파원의 동독 견문기.
『동베를린의 식당은 항상 만원이고 줄을 서서 오래 기다려야 차례가 온다』 는 말을 들었던터라 IOC(국제올림픽위원회)총회기간중의 동독견문은 우선 식당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시내번화가의 한 식당 앞에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선 것을 보고 자리 차지할 염두는 못낸채 안을 기웃거려보니 빈자리가 있는데도 들여보내지 않았다.
문 앞에는『기다리시오. 식당지배인이 자리를 지정합니다』 란 글이 붙어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런 식으로 30분 정도 기다리는 것은 다반사였다.
이 식당을 지나쳐 기자가 동베를린의 명물 중 하나로 꼽히는 TV타워 카페에 앉아보기까지는 4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이곳은 관광객이 많기 때문에 흔히 겪는 일이라고 카페의 한 종업원은 말했다.
설령 줄을 선 행렬이 없다하더라도 빈자리가 있다고 해서 그냥 앉으면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는 어렵게된다. 웨이터가 거들떠보지도 않으려니와 경우에 따라서는 내쫓기기까지 한다는 얘기다.
1주일 가량 체류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동독시민들이 『저쪽』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점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분단국가라는 인식을 갖고있는지 또는 통일된 독일을 바라고있는지 그리고 서독생활을 동경하는지 등등을 마주치는 동독사람들에게 이따금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서방사람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한결같이 전혀 다른 것이었다. 『통일이라니, 우리는 서독을 외국이라고 생각한다. 외국과 무슨 통일을 하느냐』 기자가 묵고있던 메트로폴 호텔종업원의 대답이었다.
「저쪽에 물론 물자가 풍부해 선택의 여지가 많은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거주지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더라도 나는 여기 내고향에 살겠다』 드레스덴과 라이프치히를 둘러볼 때 안내자가 한 말이다.
길거리에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한 대학생의 말은 약간 달랐다. 『물론 나는 여기서 살겠다. 그렇지만 여행에 제한이 없으면 좋겠다. 저쪽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기나 했으면 좋겠다』 동독에 처음 와 보니 없는 게 너무 많더라고 했더니 『그럴 것이다』는 대답이다.
『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물건얘기가 아니라 우선 서독에서처럼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고 개를 끌고 다니는 사람도 없으며 경찰은 많은데 무기 가진 게 눈에 띄지 않는다』 고 했더니 자전거는 있어도 고장나면 부속품을 구하기 힘들고 개를 키우려면 먹이 값이 많이 들고 경찰은 아마 가방 속에 수감이나 무기를 갖고 있을 거라는 대답이다.
동독의 생활수준이나 물가를 서독과 비교할 만한 절대적 기준은 없다. 물질적 풍요함은 물론 서독보다 뒤떨어지지만 기본식품이나 음식값에 관한 한 놀랄 만큼 값이 싼편이었다. 일반식당에서의 음식값은 서독의 절반도 안되었다.
아주 좋은 음식은 아니었지만 동베를린 TV탑의 카페에서 한국기자 3명이 야채와 비프스테이크, 그리고 포도주 2병을 점심으로 들고 치른 가격이 60마르크 (1만8천원) 남짓했다. 서독에서라면 1백50마르크 (4만5천원)를 지불하면 됐을 것이다.
물론 이는 음식수준이나 종업원의 서비스를 고려하지 않은 비교이긴 하다. 자동차 또한 비록 소형이고 플래스틱으로 씌우긴 했지만 1만마르크 (약3백만원)로 서독의 절반수준이었다.
「타라반트」라는 이름의 이 자동차는 주문해서 손에 들어오기까지 『8년 걸린다』 고 포츠담 관광차를 운전하던 사람이 말하고있지만 서독 측 자료에 따르면 동독에서 3가구 당 l가구는 자동차를 갖고있다.
이 자동차를 가지고 주말이면 모두 교외로 나가기 때문에 기자가 도착했던 토요일과 일요일 동베를린시내에 사람이 별로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동독에서도 75년부터 주5일 근무를 실시하고 있으며 하루 8시간45분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이 안내자는 해주었다.
그러나 동독에서 모든 것이 음식이나 자동차처럼 싸기만 한 것이 아니다. 가전제품이나 전자제품, 이른바 사치성 소비제품의 경우는 다르다. 동베를린 최대의 슈퍼마키트인 『젠트룸』이라는 이름의 백화점에서 동독 제 19인치 컬러TV가격은 6천마르크 (1백80만원)였다.
그 정도의 물건이라면 서독에서는 1천5백마르크 (45만원) 이하로 살 수 있다.
허름해 보이는 카세트레코더에는 4백∼6백마르크 (12만∼18만원) 의 가격표가 불어 있었다.
그보다 나은 풀질의 물건을 서독에서는 1백마르크 (3만원) 이하로 구입할 수 있다.
물건을 사러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모두가 가방이나 천으로 만든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플래스틱이나 비닐봉투에 물건을 넣어주는 게 아니라 종이봉투에 넣어주기 때문에 따로 운반용 가방이 필요한 것이었다.
서독에서 들은 얘기로는 비닐봉투가 귀하기 때문에 동독사람들은 이를 마치 귀중한 기념품처럼 모으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길거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가방을 들고 돌아다니는 게 눈길을 끌었다.
그들이 왜 가방을 들고 다녀야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은 나중에 호텔 바에서 만난 서독신문기자가 풀어주었다.
길거리에 나섰다가 어느 상점에서 무슨 물건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그때에 대비해 가방을 들고 다닌다는 얘기였다.
동독사람들은 길 가다가 상점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있으면 뒷줄에 우선 따라붙고 본다고 했다.
그러나 줄서지 않고도 귀한 물건을 얼마든지 살수 있는 특수상품이 하나있다.
모든 동구국가에는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동독 역시 부족한 외화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외화를 가진 사람에게는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관계없이 개방하는 상점이다.
욕심만큼 많은 동독시민들과의 접촉기회는 갖지 못했지만 대부분이 자기네 사회질서에 순응해 살고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독일사람 특유의 권위에 대한 순종정신이 서독에 비해 동독사람들은 더 많은 것처럼 보였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국가가 최소한의 생활여건을 충족시켜주고 있기 때문에 폴란드와 같은 위기도 이 나라는 겪지 않고 있다.
엄격한 프러시아적 사고방식을 가진 동독사람들, 특히 동독의 주류를 이루고있는 삭센지방과 튜링겐사람들은 서독보다 자기네가 우월하다는 자부심과 향토애를 갖고있다. 이런 풍토에서 현재의 동독사회체제가 필요로 하는 의식의 집단화가 쉽사리 이루어질 수 있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타협하면서 서독보다는 고향에 살겠다는 사고방식이 굳어지게 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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