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트럼프 외교 경험 없다고? 미스 스웨덴·아르헨 만나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기사 이미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워싱턴DC 힐튼호텔에서 열린 백악관 기자단 연례 만찬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워싱턴 AP=뉴시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마지막 백악관 기자단 만찬사’는 조크와 유머로 미국 정치를 풍자한 촌철살인의 압권이었다. 뼈있는 농담에 워싱턴 DC 힐튼호텔 대연회장에 모인 2600명의 기자와 할리우드·스포츠 스타, 여야 정치인 모두 박장대소했다.

‘고기·생선 중 택일’ 메뉴에 빗대
“공화, 메뉴 없는 라이언 선택” 조크
“내년엔 다른 이가 여기 서 있을 것
그녀가 누군지는 아직 아무도 몰라”
WP “코미디 최고사령관 멋진 공연”

이날 오바마는 공화당 대선 경선 선두를 달리는 도널드 트펌프는 물론,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주) 등을 도마 위에 올렸다.

그는 먼저 이날 만찬 메뉴가 ‘고기와 생선 요리 중 택일’인 점에 빗대 공화당 지도부가 추진하는 중재전당대회를 꼬집었다. “오늘 공화당 지도부의 많은 이들이 선택 메뉴에 (고기나 생선을 택하지 않고) ‘폴 라이언’이라고 적었다. 당신들은 고기나 생선을 싫어할 수도 있을 게다. 그건 당신들의 선택이다.” 트럼프나 그를 뒤쫓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주)을 제치고 경선에 참가하지 않은 라이언 하원의장을 대선 후보로 추대하려는 공화당 지도부의 행태를 ‘메뉴판에 없는 메뉴’로 비꼰 것이다.

오바마는 클린턴을 겨냥해 “오늘이 내 임기 중 마지막 ‘백악관 기자단 만찬’이다. 오늘 만찬사가 성공적이라면 내년 (퇴임 후) 골드먼삭스에서 이를 써먹으려 한다. 그러면 상당한 ‘터브먼’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해리엇 터브먼은 미 재무부가 새로 찍는 20달러 지폐의 인물로 쓰겠다고 발표한 19세기 흑인 인권운동가. 국무장관 퇴임 후 골드먼삭스에서 거액의 강연료를 챙긴 클린턴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내년 이맘때면 다른 누군가가 이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그녀(she)’가 누군지는 아직 누구도 모른다”며 은연 중에 유일한 여성 후보인 클린턴을 띄워주었다.

대선 경선 주자로는 유일하게 이날 행사에 참석한 샌더스를 향해선 “젊은이들에겐 큰 인기가 있다”면서 “동무(comrade)”라고 불렀다.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의 진보적 정책을 빗댄 것이다.

공화당의 크루즈에 대해선 ‘언제나 자신에 유리하게 말을 수시로 교묘하게 바꾼다’는 여론의 크루즈 평가를 빗대 “그는 농구 골대(basketball hoop)를 농구 링(ring)이라 하고, 야구 배트를 야구 막대기(sticks), 미식축구 헬멧을 미식축구 모자라 한다”고 꼬집었다.

이날 ‘오바마 유머’의 최대 표적은 역시 트럼프였다. 5년 전인 2011년 4월 이 행사에 참석한 트럼프는 오바마로부터 망신을 당하고 대선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는 게 미 언론들의 분석이다.

오바마는 “오늘 트럼프가 참석을 안 해 좀 아쉽다”며 “그는 뭘 하고 있을까. 집에서 ‘트럼프 스테이크’(트럼프가 창업했으나 사실상 도산)를 먹고 있을지, 아님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를 모욕하는 트윗이나 날리고 있을까”라고 풍자했다. 이어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가 외교 경험이 없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미스 스웨덴, 미스 아르헨티나, 미스 아제르바이잔 등 외국 지도자들과 만나왔다”고 말했다.

연설 말미에 그는 “이제 딱 두 마디만 남았다. 오바마 아웃(Obama Out·오바마는 사라진다)”이라 외치며 손에 쥔 마이크를 떨어뜨렸다. 가수들이 멋진 공연임을 강조하기 위해 하는 제스처를 흉내 내며 자신의 퇴장을 알린 것이다.

참석자들은 지지 정당과 관계 없이 모두 기립 박수로 환호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 대통령이 ‘코미디계 최고사령관(Comedian in Chief)’으로서 마지막 공연을 멋지게 해냈다”고 극찬했다.

기사 이미지

올해 상이군인대회를 앞두고 미·영 정상이 코믹 대결을 펼쳤다. 오바마 대통령과 부인 미셸이 팔짱을 낀 채 승리를 자신하자(왼쪽), 영국 여왕과 해리 왕자가 코믹한 표정으로 대응했다(오른쪽). [AP=뉴시스]


▶관련 기사
① “5년 전 오바마에게 공개 망신당한 트럼프, 정계 진출 불 댕겨”
② 2005년 정치 신인 오바마는 트럼프에 대해 뭐라고 했을까?



◆상이군인대회 두고 겨룬 미·영 정상=오바마의 부인 미셸이 자신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 “인빅터스 게임 준비 다 됐나. 승부는 시작됐어”란 글을 올렸다. 인빅터스는 영국 해리 왕자의 주도로 2014년 런던에서 열린 상이군인 ‘올림픽’이다. 올해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다. 8초 분량의 동영상도 링크됐다. 거기에선 미셸이 팔짱을 낀 채 진지한 표정으로 “이봐, 해리 왕자. 인빅터스게임에서 한번 덤벼보라고 우리한테 말했던가”라고 하고, 오바마 대통령도 “조심해야 해”라고 말했다.

해리 왕자는 트위터에 “저걸 어떻게 앙갚음하지”란 글을 올렸다. 여왕은 오바마 부부가 당치도 않은 주장을 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제발”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런던=김현기·고정애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