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서압수」바람..."불온"과 "건전"사이|선정기준과 개선대책을 알아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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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른바 이념서적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충격과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압수대상서적과 유인물은 모두 3백6종. 문제된 서적 중엔 당국이 밝힌 대상선정기준과 맞지않는것도 있어 사전분석과 검토가 철저했는지, 또 단속과정에서 헌법에 보장된 출판의 자유를 경범죄처벌법으로 제한하는 것도 합당한 일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평소 출판문화정책에 허점을 드러낸 것이 아닌지 보는 견해도 없지 않다. 이번 단속의 파문을 계기로 문제점과 개선책을 알아본다

<문제서적을 보는 시각>
한 권의 책을 놓고 당국의 견해와 출판사의 입장 사이는 깊고도 멀다 이를테면 백산 서당이 펴낸 『철학의 기초이론』 의 경우 당국은 이 책이 『변증법적 유물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고 분석한 반면 출판사측은 『관념론과 유물론에 대한 비판적 조명을 통해 변증법적 역사관의 역동성에 대해 논의한 책』이라고 주장한다.
이삭에서 펴낸 『중국혁명의 해부』 (동경대출판부편)에대해 당국은 『중국공산당정권수립과정을 반미·친중공적 입장에서 분석· 기술했다』 고 분석한 반면 출판사측은 이 책이 19세기말제국주의의 희생물이된 중국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혁명을 완수했는가를 밝히고있다면서 중국혁명이 모택동과 공산주의자에 의해 「지도」 되기보다 민중의 혁명역량에 의해 완수됐다는 시각을 갖고 있는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출판사측은 지금까지의 판금도서들의 내용을 분석. 당국이 특히 변증법적 관점에서 사물에 대한 시각을 설정한 책, 인간소외와 휴머니즘에 관한 책, 서구의 진보적 지식인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분석한 책, 근·현대사의 기본동력을 기층 민중운동에 두고 연구한 책등을 판금시켜 왔으며 세계역사의 발전단계상 자본주의체제는 절대 불변의 영속적 체제가 아니라 내부 모순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시각을 가진 책, 노동운동에 관한 책, 사회에 대한 구조적 시각속에서 이념·계급·변혁을 다룬 책, 급진적인 여성해방사상을 다룬 책, 인간구원만이 아니라 사회적·역사적 차원의 구원이 선행돼야 한다거나 눌린자를 위한 종교가 돼야 함을 역사적으로 밝힌 책, 민중의 고통받는 삶을 다룬 문학작품이나 제3세계의 저항문학 등도 판금의 단속대상이 돼왔다고 주장했다.

<납본과 심의현황>
지금까지 납본제도의 변칙운용과 심의 기준의 모호성이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서적에 대한 심의는 문공부간행물 심의실에서 하고 있다. 심의관실은 홍보조정실 산하에 있고 정부조직법상의 문공부직제로 되어있으며 심의요원은 전문위원 7명과 촉탁13명이다.
심의는 출판법에 의한 납본간행물의 검토 및 납본필증발부를 위한 직무수행을위해 행해지도록 되어있으며 중요한 것은 구속력이 없다는 점이다.
심의는 국내서적의 경우 간행물심의관실에서 모두 끝내고 원서의 경우 간혹 자문위원에 내용검토를 위촉하기도 한다. 업무처리는 심의중 문제내용이 발견되면관계기관에 업무참조연락을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실제의 운영은 이와 다르다고 출판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우선 납본필증이 나오지 않는다. 납본은 출판사들이 출판한 책에 대한 신고의무다. 납본된 책을 받았다는 영수증 성격의 것으로 당연히 나와야하는 것이라고 출판계에서는 보고있다.
현실적으로 간행물심의실은 서적상연합회를 통해 납본필증을 내주지 않은 책을 알리고 판매하지 말도록 협조해줄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책들은 판매중지 종용도서 혹은 판금도서란 이름으로 서점에 통보되고있다.
출판사측에도 납본필증이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보하고 판매하지 말아줄것을 종용하거나 각서를 받는 경우도 있다.
납본기간이 시판전 15일인 것도 출판사에는 부담이 된다. 책이 나온 후 15일간 책을 창고에 쌓아두어야 한다.
현행심의의 문제점으론 우선 심의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심의요원들이 전문화되어있지 않은 점도 함께 지적되고 있다 .20명의 요원으로 전문적인 것을 모두 다룰 수 없음은 분명하다. 고도의 전문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식을 갖춘 심의위원이 부족하다고도 한다.
이 때문에 심의는 깊이 있게 다루어지지 못한다. 면책을 위한 과잉반응도 있으며 심의내용이 공개되지 않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납본에 따른 이 같은 심의가 위헌이냐 아니냐를 제쳐두더라도 심의과정에 허점이 많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자율심의기구 구성문제>
청사출판사 대표 함영회씨는 『어떤 형태의 심의도 출판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 분명하다』 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처한 여건을 감안, 전반적인 합의로서 자율적인 심의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모아진다면 자율심의기구의 구성도 고려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자율심의기구를 구성하는데는 공청회 등을 통해 전반적인 합의를 모으는 과정이 전제돼야 한다는 조심스런 견해를 보였다.
한울사대표 김종수씨는 당국의 도서심의등 「행정지도」 기능을 민간에 이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풀빛사대표 나병식씨도 사회의 전반적인·추세에 맞춰 출판물도 독자의 선택에 맡기는 방향으로 나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몇몇 출판사들도 현재와 같이 음성적인 심의와 판금조치보다는 자율적인 심의기구 운영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현행심의기능을 강화하는 법개정엔 반대했다.
심의기구가 구성될 경우 그 생명은 「자율성」과 「전문성」에 달려있다. 관계전문가들이 참여한 민간기구로서 장기적 문화발전의 안목에서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심의기준이 만들어져야겠다는 것이다.
심의결과에 대한 구속력은 현행법상 출판·판매에 대한 형사처벌의 대상이 출판사인 만큼 권고적 기능에 한정돼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이러한 자율기구를 구상한 적이 있으나 실현되지 않았었다. 출협은 최근의 사태와 관련하여 모임을 갖고 자체적인 대응책을 발표했으나 문제의 본질에는 접근하지 못한 것으로 출판계 일각에선 보고있다.<임대걸·이양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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