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빅딜'은 없다"고 해놓고 구조조정 제대로 되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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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어제 ‘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협의체’ 회의를 열고 조선과 해운산업에서의 ‘빅딜’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는 조선 3사의 빅딜에 대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합병 논의에 대해서도 “현시점에서 시기상조일 뿐 아니라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대신 해당 기업에 인력 감축 등 추가 자구계획을 요구하고 주 채권은행의 관리를 강화하는 등 구조조정 고삐를 바짝 죄기로 했다. 우선은 산업 전체보다 개별 기업 구조조정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임 위원장의 발언 배경을 짐작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구조조정 대상인 조선·해운사는 어쨌거나 민간기업이다. 정부가 대놓고 개입하면 통상 마찰 같은 후유증을 불러올 수 있다. 너무 일찍 해법을 내놓으면 대주주나 노조의 자구노력이 약해지고 재원을 부담해야 할 국민 여론이 나빠질 수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노사가 함께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자구노력을 한 뒤 정부가 나서는 게 순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선 너무 안이한 접근이다. 조선과 해운업의 부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8년째 쌓여 왔다. 조선 3사와 해운 2사의 부채는 78조원에 달한다. 버틴다고 나아질 기미도 없다. 조선 수주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사실상 끊겼고, 국제 해운 물동량과 운임은 길고 긴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 개별 기업이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체의 생존이 시험대에 올라 있는 형국이다.

이런 때일수록 모든 수단과 가능성을 열어 둬야 구조조정이 빨라진다. 국가 경제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기준으로 원점에서 득실을 따져야 한다. 회사를 통째로 합치는 빅딜, 사업 부문을 떼고 합치는 스몰딜도 당연히 고려해야 할 옵션이다. 그래야 대주주와 노조의 반발을 잠재우고 채권단의 고통 분담을 유도할 수 있다. 임 위원장이 말한 ‘사즉생(死卽生)의 각오’가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