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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재현의 시시각각

"영화는 좋든 나쁘든 상영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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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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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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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동은 부산판 ‘시네마 천국’이다. 실향민과 인근의 자갈치·국제시장 상인들에게 남포동 극장가는 훌륭한 놀이마당이었다. 영화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 꿈을 다진 곳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와 달구처럼 서민들이 삶의 고단함을 녹인 현장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싶은 것일까. 부산 시민들의 유별난 영화 사랑은 프로야구와 함께 삶의 일부가 됐다. 20년 전 남포동에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첫 스크린이 올라왔을 때 시민들은 ‘부산 갈매기’로 화답했다.

그런 영화제가 조직위원장 선정을 놓고 지루한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조직위 측이 2014년 영화제에서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 벨’을 상영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조직위에 대한 감사원 감사, 이용관 위원장 횡령 등 혐의로 고발, 영화인 반발이 이어졌다. 부산시는 예산 전용을 문제 삼아 조직위 임원들의 쇄신을 요구하고 있다.

1968년 봄 프랑스 파리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논쟁으로 들끓었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장관이 시네마테크 원장을 몰아내려 한다.” 학생과 지식인 연대는 외쳤다. 관료주의에 물든 ‘문화의 적’들이 우리의 자유를 강탈하려 한다고…. 그들의 문화혁명은 그해 5월 혁명으로 이어졌다.(※2003년 개봉된 ‘몽상가들’ 도입부를 근거로 재구성했다. 영화감독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마지막 황제’ ‘순응자’도 제작했다.)

이탈리아 베니스 영화제는 2002년 사상논쟁으로 파행을 겪었다. 베를루스코니 당시 총리가 “영화제가 좌파들의 잔치가 돼 버렸다”며 집행위원장과 임원들을 물갈이하면서 막을 올렸다. “영화는 창고에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는 반론이 거셌다. 영화제가 한동안 표류하면서 ‘전시 행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초래했다.

“영화는 좋든 나쁘든, 오래됐든 아니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만들어지고 상영된다. 누벨바그(Nouvelle Vague·프랑스 영화계에서 일어났던 새로운 물결)의 영화인이 프랑스로 모여드는 이유일 것이다.” 베르톨루치는 어떤 형태의 규제와 속박도 거부했다. 정치권력은 영화계에선 한낱 조롱의 대상에 불과했다. 왜? “영화인들은 인간에 대한 신념과 애정, 세상을 바라보는 상상력이 풍부하니깐….”

정치권력과 영화계는 위험한 함수 관계다. 한국 영화인들은 이번 사태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할까.

현 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반목이 자리하고 있다.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에 이어 문화권력까지 챙기려 한 것이다.” 한 관계자의 주장이다. “자신들의 권력을 다지기 위해 영화제를 마케팅 도구로 이용하려다 거대한 반발에 부닥치면서 문제가 꼬여버린 것이다.” 감사원 개입을 근거로 제시했다. 정권의 국정철학을 따라줄 것을 요구하는 보수 정부의 한계라고 몰아붙였다.

해결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영화평론가 오동진씨의 주장.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부산시와 부산영화제조직위의 입장을 조정해줄 원로가 필요하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김동호 전 조직위원장을 추천했다. 김 전 위원장은 공동위원장직까지 포함해 15년간 부산영화제를 치렀다. 영화계 인사들의 상당수가 오씨의 주장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21년째를 맞으면서 부산영화제는 수천 개의 세계 영화제 중 일곱 번째로 규모가 커졌다. 상하이·도쿄·홍콩영화제를 제치고 아시아 영화판의 허브 역할을 한다. 10월 영화제가 정상적으로 개최되려면 5월 말까지는 행사의 방향성과 의미를 담은 포스터가 제작돼야 한다. 그만큼 시간이 촉박하다.

최근 있었던 부산 경제부시장의 서울 기자회견으로는 충분치 않다. 언론은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다. 어쩌면 부산시가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을 시작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휴, 설득이 안 되네”라는 멘트는 클로징으론 적절치 않다. 정치 문제는 정치로 풀어야 한다.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