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같은 침상에 누워 다른 꿈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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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 4강전 1국> ●·이세돌 9단 ○·커 제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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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보(27~36)=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말이 있다. 문자 그대로 같은 침상에 누워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중국 남송(南宋)시대 학자 진량(陳亮)의 ‘여주원회서(與朱元晦書)’에서 나온 사자성어인데 우상 일대 27부터 34까지의 진행을 보면 딱 그 말이 떠오른다. 일단, 27은 적극적인 수다. 흑A로 막아 귀를 막아 안정하는 게 보통이지만 여기서는 안정보다 봉쇄를 돌파하는 길을 택했다. 28은 어떤가. 계속해서 우상귀 쪽 흑의 중앙 진출을 봉쇄하려는 행마처럼 보이지만 그보다는 상변 백 세력의 확장과 입체화가 숨겨진 본의다. 물론, 27부터 35까지의 행마 역시 단순한 중앙 진출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은연중 우변 백을 곁눈질하며 공격 기회를 엿보는 게, 단단한 호구로 중앙에 진지를 구축한 흑의 더 큰 의도다.

사실, 수순 중 32 때 검토실에서는 ‘참고도’ 흑1 이하의 싸움을 예상하고 있었다. 백2 이하 흑9까지 쌍방 어려운 싸움인데 결과의 좋고 나쁨을 떠나 상대가 강하게 맞서면 더 강력하게 맞받아치는 게 이세돌의 기질이니까. 어쨌든 끊고 싸울 것이라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세돌은 기대를 저버리고(?) 점잖은 타협을 택했다. 36은 타이밍 좋은 응수타진.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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