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3당 6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기사 이미지

이정재
논설위원

총선 후 여의도는 색깔전쟁 중이다. 당은 크게 셋이지만 색깔은 각각 두 개씩 여섯이다. 진보우파부터 막장좌파까지 표를 노려 한 배를 탄 결과다. 치고받지 않는다면 그게 비정상일 것이다.

제1당 더불어민주당의 두 색깔은 친노(親盧)와 김종인 대표다. 친노가 급진좌파라면 김종인은 적당히 우파진보의 물을 탔다. 그는 경제민주화를 말했지만, 친노와는 거리를 뒀다. 크게 오른쪽으로 한 발을 디뎠다. 그의 민주화는 실용적이다. 성장과 효율을 무시하지 않는다. 재벌 규제라는 핵심 고리는 같지만 친노의 폐(廢)재벌과는 다르다. 삼성의 돈으로 광주에 일자리를 만들자고 했다. 용(用)재벌로 친노와 비켜간 것이다.

선거 중 잠시 봉인했던 칼을 먼저 꺼낸 건 친노의 정청래다. 그는 “돈 먹고 감옥 간 사람은 당 대표서 배제해야 한다”며 날을 세웠다. 지난 주말 세월호 2주기 행사는 또 다른 빌미가 됐다. 김종인은 당 차원의 공식 참석을 삼갔다. 대신 개별 의원 차원의 참여는 ‘막지 않기로 했다’. 적극 권유도 아니고 그저 막지 않기로 했다니? 친노는 분노했다. 대신 중도와 보수는 한숨을 돌렸다. 김종인식 물타기의 효과다. 여의도 정객들은 “김종인의 가장 큰 공은 더민주의 정체를 헷갈리게 한 것”이라고 말한다. 김종인이 팽(烹) 당하면 그 공도 더불어 사라질 것이다.

국민의당은 ‘진보우파’ 안철수와 ‘닥치고 왼쪽’ 천정배가 겨룬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터져나온 당권·대권 분리론은 예정된 수순이다. 천정배는 당권, 안철수는 대권을 쥐고 싶어한다. 여기까지는 큰 갈등이 없어 보인다. 운용의 묘를 살리면 가능하다. 하지만 운용의 묘만으론 안 되는 부분이 널렸다. 천정배는 “보수 정권 8년을 청문회에 올리자”며 심판론을 들고 나왔다. 분풀이·한풀이·세몰이에 익숙한 막장 좌파의 전형이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며 “민생 우선”을 말하는 안철수와는 온도차가 크다. 더민주의 친노·김종인보다 색깔의 접점을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끝장 보수와 유승민의 좌클릭 보수, 새누리당의 색깔 전쟁은 제2라운드를 맞고 있다. 시간은 유승민의 편이다. 끝장 보수는 이번 총선에서 처절하게 심판을 받았다. 더 이상 간판을 유지하기 어렵다. 유승민의 ‘사회적 경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친박은 “정체성이 무너진다”며 유승민의 복당을 거부하고 있지만 웃기는 소리다. 새누리의 정체성이 언제부터 끝장 보수뿐이었나. 경제민주화를 긴급 수혈해 집권에 성공한 게 바로 박근혜 대통령 아닌가. 보수좌파 유승민의 복당이 새누리의 판을 바꿀 것이다.

3당6색. ‘이질적 공생’이 처음은 아니다. 김영삼은 민주화 인생을 접고 보수의 전당, 민자당에 뛰어들었다. 그러곤 장담대로 호랑이를 잡았다. 노무현은 또 어땠나. 반미주의자로 불렸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밀어붙였다. “좌파·우파 정책을 가릴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에 필요한 것을 하고, 서로 모순된 것을 조화시켜 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스스로를 ‘좌파 신자유주의’로 규정했다. 이라크 파병을 결심했을 땐 ‘친미 자주’를 말하기도 했다. 지지자들마저 그에게 등을 돌렸지만, 역사는 그를 ‘참 좋은 대통령’으로 복권시켰다.

여섯 색깔의 분화와 경쟁은 이제 시작이다. 색깔 배합에 따라 당의 운명은 물론, 내년 대권의 향배와 나라의 명운까지 갈릴 것이다. 4·13 총선의 민의는 분명하다. 극좌나 극우는 안 된다. 모두를 아우르는 100% 대한민국을 만들어라. 그러므로 어느 일방의 독주보다는 좌우 융합형이 성공의 색깔이 될 것이다. 나라와 경제가 성숙할수록 이념은 끊임없이 중앙으로 회귀하게 마련이다.

강호의 호사가들이 꼽는 다음 대권의 색깔은 진보우파 또는 보수좌파다. 안철수나 유승민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측근의 전언에 따르면 김종인은 “안철수가 결국 당을 쪼개 여권과 손잡고 대권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김부겸, 반기문 등의 대항마도 속속 나설 것이다. 누가 됐든 조화의 색을 만들어내는 자가 민심을 얻고 권좌를 차지할 것이다. 논설위원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