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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미끼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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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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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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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를 수 있는 음식이 짜장면과 짬뽕뿐이라면 금방 물리게 마련이다. 아무리 배고파도 둘 다 쳐다보기 싫어질 때가 많다. 이럴 때 냉면이나 볶음밥 같은 다른 메뉴를 보면 입맛이 당긴다.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당 돌풍도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라는 두 가게가 오랫동안 독점해온 정치판에 국민의당이라는 새 가게가 선보였으니 말이다. 호기심이 발동한 유권자, 특히 젊은 층이 대거 투표장으로 몰려가면서 새누리당의 참패를 불러 왔다. 국민의당은 선거에 대한 관심과 투표율을 높이는 미끼 역할을 했다. 휴대전화나 가전시장에 참신한 상품이 새로 등장하면 기존에 팔리던 제품들까지 판매가 덩달아 늘어나는 것과 비슷한 효과다.

미끼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존 상품의 비교우위를 가려주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더민주의 수도권 압승엔 국민의당이라는 미끼가 상당히 작용했다. 유권자들이 국민의당 가게로 몰려갔지만 ‘경쟁력 있는 지역구 후보’라는 상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정당투표로 예약을 해두고 옆 가게를 둘러보다 더민주 소속 지역구 후보를 구매한 투표자가 적지 않았다.

마케팅 이론에선 이런 현상을 ‘미끼효과(Decoy Effect)’로 설명한다. 매력적인 미끼는 손님을 불러모아 시장을 키우고, 때론 기존 상품의 우열까지 가린다. 열 개 들이 1만원짜리와 서른 개 들이 2만원짜리 상품이 있다고 치자. 진열대 앞에 선 소비자들은 고민하게 마련이다. 가격은 1만원짜리가 싸고, 가격대 성능비론 2만원짜리가 낫다.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가성비가 우월한 2만원짜리를 집어 들어야 하지만 실제론 꼭 그렇지 않다. 쇼핑백의 크기나 물건의 부피, 지갑 사정 등을 따져 1만원짜리를 선택하는 고객도 적지 않다. 고민하다 뒤돌아서는 사람도 생긴다.

이때 스무 개 들이 2만원짜리 상품을 진열대에 추가하면 상황이 바뀐다. 새로운 상품은 1만원짜리보다 나을 게 없다. 용량에 비례해 가격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기존의 2만원짜리보다는 가성비가 확실히 떨어진다. 결국 기존의 2만원짜리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판매가 증가한다. A와 B를 비교하던 고객이 무의식 중에 A와 C, B와 C를 비교하면서 생기는 일이다. 새로 등장한 상품이 기존 상품을 비교하는 기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국민의당 미끼효과는 총선뿐 아니라 20대 국회 내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소야대, 3당 정립이라는 절묘한 구도 덕분이다. 국민의당의 입장이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정책 차이를 드러내고 우열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이미 세월호특별법, 노동개혁 4법, 국정교과서 문제 등을 둘러싼 국민의당의 입장에 관심이 집중된다. 일자리 창출에선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에선 더민주의 편을 들면서 어부지리를 챙길 가능성도 점쳐진다.

하지만 거대 양당 간의 조정자 역할에 만족하면 국민의당의 미래는 없다. 미끼효과엔 반전이 숨어 있다. 기존 상품을 비교하는 기준으로만 쓰이면 미끼는 영원히 미끼일 뿐이다. 하지만 가격과 성능 모두 기존 상품을 압도하면 미끼는 대세가 된다. 앞선 사례에서 1만원에 스무 개짜리 상품을 내놓는 경우가 이렇다. 1만원에 열 개 짜리, 2만원에 서른 개짜리 상품이 모두 경쟁력을 잃게 된다.

안철수 대표는 총선 뒤 “단순한 캐스팅보터를 넘어 정책을 주도하는 정당이 되겠다”고 했다. 미끼가 아닌 주류가 되겠다는 의미이길 바란다. 그러려면 짜장면과 짬뽕에 질린 국민들에게 이 둘을 섞은 짬짜면을 내놓아선 안 된다. 볶음밥이나 냉면처럼 완전히 새로운 메뉴를 제시해야 한다. 새누리당·더민주와 차별화되고 비교우위를 입증할 수 있는 국가발전 어젠다와 경제 전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즐거운 미끼 역할을 스스로 박차고 어렵고 고단한 대세의 길로 걸어가야 한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의 흥망, 어쩌면 대한민국 정치의 업그레이드가 여기에 달렸다.

나현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