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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탁구’의 11년 집념 … 토종 천연효모빵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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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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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인 SPC그룹 회장(왼쪽 두번째)이 파리바게뜨 베트남 호치민 까오탕점에서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이번 토종 효모 발굴로 해외에서도 우리 효모로 만든 빵으로 글로벌 베이커리와 경쟁할 수 있게 됐다. [사진 SPC]

노릇노릇 먹음직스럽게 부풀어 오른 모습에 고소한 냄새, 쫄깃쫄깃한 식감까지. 모두 반죽에 넣은 효모(이스트)가 만들어 낸 마법이다.

SPC그룹 허영인 회장
전국 청정지역 돌며 우리 효모 찾아
식감 쫄깃하고 수분도 오래 지속
연간 효모 수입 70억 대체 효과

파리바게뜨·파리크라상 등을 운영하는 SPC그룹이 국내 최초로 토종 천연효모를 발굴해 빵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SPC는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과 공동연구로 전통 누룩에서 제빵에 적합한 천연효모를 찾아냈다고 19일 밝혔다. 이름도 ‘SPC-SNU 70-1’로 붙였다. SPC는 2012년부터 서울대팀과 ‘한국형 제빵용 천연 미생물 자원개발 개발을 위한 발효공학 연구’를 해왔다. SPC는 이 효모로 27종의 빵을 생산·출시했다. 2005년부터 토종 효모 연구에 나선지 11년 만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빵은 해외에서 수입한 가공 이스트로 만들었다. SPC도 이스트 수입에만 연간 70억원(3000t)을 쓰고 있다. SPC 관계자는 “‘효모를 자연에서, 그것도 우리 전통식품에서 추출해 빵 생산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효모로 만든 빵은 다른 원료의 맛을 살려주고 더 쫄깃쫄깃하며, 수분이 덜 날아가 시간이 지나도 빵 맛이 지속된다”고 덧붙였다.

효모를 ‘과학적으로 관리’하게 됐다는 점도 성과다. 최근 천연 발효종으로 만든 ‘건강빵’이 많이 등장했지만 어떤 효모가 어떤 향과 맛을 내고 어떤 기능과 효과가 있는지 체계적으로 분석해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SPC와 서울대 연구진은 청풍호·지리산·설악산·월출산 등 국내 청정 지역을 돌아다니며 미생물을 채집하고, 토종꿀·김치·누룩 등 전통식품을 구하려 각 지방의 5일장을 찾아다녔다. 분석한 미생물만 1만종 이상. 이 중 제빵에 적합할 만한 1000여종의 효모와 유산균주를 선별해 실험을 거듭했다. 연구에 참여한 서울대 식품생명공학과 서진호 교수는 “고유 발효 미생물 종균이 거의 없는 국내 발효식품산업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이번 성공엔 허영인(67) SPC그룹 회장의 집념이 큰 몫을 했다. 허 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빵의 핵심인 효모 독자 기술이 있어야 한다”며 효모 개발을 전폭 지원했다. 2005년부터 160억원을 투자했다. 성공 소식을 접한 허 회장은 “이제야 우리 만의 맛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게 됐다. 진짜 한국 빵을 만들게 됐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빵의 기본이 되는 밀가루와 효모에 대한 중요성은 허 회장이 1969년 삼립식품에 입사하면서부터 내내 강조해온 바다. 실제 SPC는 1997년 외환위기 때 밀가루 공급이 끊기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밀가루 납품 대기업이 SPC 자회사 샤니의 부도설에 현금 결제를 요구했고 결국 밀가루 공급을 중단한 것이다. 허 회장은 이 일에 충격을 받아 2008년 밀가공 업체인 밀다원을 인수해버렸다.

효모는 좀 더 까다로웠다. 국내에 천연효모의 생화학적·유전학적 특성을 규명하는 기초 연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이번 토종 천연효모는 가공 이스트보다 가격이 3~4배 비싸 생산 과정에서 원가 부담이 될 수 있다. 매장별로 500종류(연간) 이상인 빵 중 어떤 빵에 적용할 지, 고객의 반응이 어떨 지도 아직까진 미지수다.

SPC 관계자는 “해외 파리바게뜨 제품까지 토종 천연효모로 만들어 글로벌 베이커리들과 경쟁하는 것은 물론, 우리 효모를 해외에 수출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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