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19대 국회는 민생법안 처리하고 문 닫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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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는 세워둔 채 패거리 싸움뿐인 정치권에 환골탈태를 요구한 게 총선 민의다. 하지만 정치권은 아직도 민의를 읽지 못하고 있다. 3당 체제가 굴러가려면 타협과 협력 외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선거를 마친 여야 3당은 당 내부 상황조차 정돈하지 못하고 또다시 패거리 싸움이다. 이러다간 양당 계파전이 3당 계파전으로 확대돼 오히려 국론만 갈리는 상황이 올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총선 참패로 지도부가 와해된 새누리당은 비대위 구성을 놓고 대립이 격화됐다.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된 원유철 원내대표가 조기 이양 계획을 밝혔지만 비박의 반대는 조직적이다. 그럴 만한 일이다. 새누리당의 선거 참패는 박근혜 정권의 오만과 독선, 불통에 대한 심판이다. 청와대 권력에 기댄 ‘완장 권력’의 호가호위도 일조를 했다. 원 원내대표는 패배 책임의 한가운데 있다. 그러니 ‘원유철 비대위’란 민의를 외면한 발상이다. 반성과 쇄신보다 당권 경쟁이 먼저란 식인데, 이런 식이면 새누리당은 당권 싸움으로 두 동강이 날 판이다. 친여 무소속 7명의 복당 문제도 민의를 거스르는 짓이다. 선거 전엔 “절대 안 받는다”고 공언하다가 선거에 졌다고 막말 의원까지 조기에 입당시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친박과 비박은 복당 문제로 싸움질이다.

두 야당 행태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민생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란 약속으로 표를 얻었다. 특히 더민주는 “문제는 경제다”를 내세워 제1당에 올랐다. 하지만 총선 뒤 두 야당이 가장 먼저 선언한 건 세월호특별법 개정, 국정교과서 폐기 등 정치 이슈들이다. 여기에다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8년에 대한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선언하자 더민주는 동조했다. 과거 야당의 한풀이식 운동권 정치와 다를 바 없다. 두 야당의 선명성 경쟁은 당내 계파 갈등과 무관치 않다. 더민주는 김종인 대표의 추대 문제, 국민의당은 당권·대권 분리 주장으로 어수선하다.

대한민국은 지금 안보와 경제의 복합 위기다. 북한이 곧 5차 핵실험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거제와 포항 등 산업 현장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수출은 격감하고 경제성장 전망치는 줄줄이 하향 조정됐다. 정치권이 총선에서 무서운 민심을 확인했다면 20대 국회 개원까지 기다려선 안 된다. 당장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총선 때 약속한 민생과 경제 이슈를 챙기는 게 시작이다. 노동개혁 4법을 비롯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이 대표적이다. 국정의 최우선 과제인 청년 일자리를 만들고 한국 경제 재도약의 디딤돌로 삼자는 것인데 4년 넘게 법 처리가 안 되면서 자동 폐기를 눈앞에 뒀다.

여야는 모두 총선 민심을 겸허히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빈말이 아니라면 정치권은 타협의 정치로 당장 민생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민생과 국익을 생각하는 정치만이 살길이라는 게 20대 총선의 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