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법, 스피드가 생명…여야 이견 없는 법안엔 우선처리제 도입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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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국회 개원 후 상정된 국회법 개정안은 180개에 달한다. 국회 안팎에서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문제와 대안도 대체로 반영됐다. 그러나 이 가운데 처리된 건 23건뿐이다. 문제와 해결책이 뭔지 뻔히 알면서도 ‘셀프개혁’엔 인색했다는 뜻이다. 발의된 국회법 개정안을 종합해 ‘일 하는 국회’를 만들 요건을 추려 보면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신속성(Speed)·전문성(Professionalism)·효율성(Effectiveness)·양심(Conscience)’이다. 영문 앞 글자를 따면 ‘스펙(SPEC)’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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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Speed(신속성)=무쟁점 법안 신속처리제가 대표적이다. 여야 간 이견이 없는 법안은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제도다.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쟁점이 없는 법안까지 발목 잡히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다. 예컨대 지난 2월에 국회는 쟁점 법안의 ‘빅딜’에 나섰다. 본회의를 앞두고 여야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비롯한 80여 건의 무쟁점 민생법안에 대한 합의를 거의 마쳤다. 그런데 여당의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에 야당이 반발하면서 다른 법안까지 덩달아 볼모로 잡혔다.

20대 국회 제대로 일하게 하려면
매월 임시회 열어 본회의 상설화
상임위 중심 운영, 전문성 강화를
회의 50% 이상 결석 땐 징계해야

이렇게 한 번 실기한 법안은 다음에도 처리가 어려워진다. 아예 빛을 보지 못하고 폐기되는 사례도 허다하다. 20대 국회가 생산적인 국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런 구조적 문제부터 보완해야 한다. 무쟁점 법안 처리안 외에도 신속처리대상 지정 요건을 완화하고 위원회 심사 기간과 본회의 상정 기간을 단축하는 것도 스피드 국회를 위한 대안으로 꼽힌다.

② Professionalism(전문성)=국회의 입법 전문성을 높이는 일도 시급하다. 상설소위원회 정례화 등이 이런 취지로 19대 국회에 발의됐다. 입법 전문성을 높이자면 상임위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학과 교수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경제 여건을 감안하면 국회의원 개인의 전문성과 정책능력을 높일 인프라를 구축하고 담당 상임위 중심으로 국회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의원 보좌진에 대한 공정한 채용과 함께 일자리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더민주 박남춘 의원은 “예산이나 입법, 행정부 기능을 파악해야 할 보좌진이 전문성보다는 의원과의 친·인척 관계에 따라 채용돼 입법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이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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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Effectiveness(효율성)=의사일정 요일제와 매월 임시회 개회 등을 통해 본회의를 더 자주 열자는 주장도 눈길을 끈다. 국회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가결률을 기준으로 19대 국회의 입법 효율성은 역대 최저다. 발의된 법안은 많지만 국회를 통과해 실제 적용된 건 적었다는 얘기다. 지역구 행사나 정쟁 등 대내외적인 상황으로 빈번히 어그러지는 의사일정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의사일정 요일제는 현재 날짜별로 정하는 의사일정을 요일별로 정해 운영하는 방안이다. 예컨대 월·화요일에는 상임위 전체회의를 열고 수·목요일에는 상임위 소위와 본회의를 여는 식이다. 국회가 고정적으로 운영됨으로써 국회의원들이 회의 일정을 조정하기 쉽고, 그만큼 회의 참석률도 높일 수 있다. 짝수 달에만 여는 임시회를 매월 개회로 변경하자는 의견도 있다. 더민주 이언주 의원은 “법률의 제·개정이 사회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며 “충분한 예산 및 결산 논의를 위해서도 상시국회 개회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④ Conscience(양심)=국회의원의 윤리의식을 높이자는 제안이다. 정당한 이유 없이 본회의나 상임위 회의에 50% 이상 출석하지 않으면 징계하거나 징계 내용을 세분화해 차등 적용하는 방안이 이에 해당한다. 개정 내용이 적은 법안은 위원회 제안으로 일괄 개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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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의안 수가 의정활동의 실적을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되자 하나의 법안을 사실상 개정 사항이 없는 여러 개 법안으로 나눠 발의하는 꼼수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일부 의원의 이 같은 ‘건수 늘리기’는 의원입법의 질을 저하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부 국회의원의 불성실한 태도와 불필요한 저질 법안으로 인해 꼭 필요한 경제 법안의 처리가 늦어진다”며 “의원들이 입법활동을 성실히 하도록 유도할 보완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함승민·장원석 기자 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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