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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박 대통령의 실망스러운 '총선 인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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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선거 닷새 만에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4·13 총선 인식’은 실망스럽다. 일각에서 선거탄핵, 투표탄핵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사나워진 민심의 요구에 크게 못 미쳤다. 그 민심은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 진솔한 사과와 새로운 변화를 알리는 일대 인적 쇄신을 기대했다. 하지만 어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의 육성(肉聲) 발언엔 사과도 없었고 쇄신의 청사진도 보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이번 선거의 결과는 국민의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서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에 두고 사명감으로 경제 발전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대 국회가 경제와 민생에 매진하는 일하는 국회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정부도 새롭게 출범하는 국회와 긴밀히 협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의 모두 발언은 보통 10분이 넘는데 이날은 6분 정도로 짤막한 편이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총선 인식이 실망스러운 건 ‘민심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면서도 ‘정작 민심이 무엇인지’ 실체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거 막판에 새누리당 지도부가 무릎을 꿇는 ‘대국민 사죄 쇼’를 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사죄한다는 것인지 밝히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대통령의 발언 어디에서도 명쾌한 상황 인식, 구체적인 조치나 행동을 약속하는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4·13 총선은 ‘박근혜 3년’에 대한 국민의 중간평가였다는 점을 박 대통령은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유권자는 박 대통령이 선거에 임하면서 휘둘렀던 ‘배신자 심판론’과 ‘국회 심판론’을 역으로 심판했다. 새누리당의 막장공천 파동은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패인이었다. 완장을 찬 친박세력들이 대통령의 뜻을 맹목적으로 떠받들며 온갖 전횡과 꼼수와 국민 모독적 행태를 보인 것에 대해 박 대통령은 최종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유권자는 자기들이 맞이한 경제의 위기와 삶의 고단함에 대해 야당·국회에 책임을 돌리려는 박 대통령의 사고방식을 거부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3년간 대구·경북 편중 및 수첩인사의 반복, 청와대·정부와 긴밀한 의사소통의 결핍, 집권당과 국회에 대한 권위주의적 자세 등으로 대선 때 박 대통령을 찍은 많은 지지자조차 등을 돌렸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여소야대도 모자라 집권당을 졸지에 제2당으로 추락시킨 총선 패배의 책임자들을 당과 청와대, 정부에서 골라내 엄중하게 문책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어제 발언 중 경제 살리기 구조개혁과 안보위기에 초당적 대처를 주문한 대목은 유동적인 정치 상황에서도 우리가 일관되게 지켜야 할 국가 목표다. 국가적 목표에 야당이 협조하고 국민이 한마음으로 동참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은 좀 더 민심에 근접한 총선 인식을 내놓고 당·정·청 쇄신 의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