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룰 뒤늦게 이해? 트럼프 “대의원 선정은 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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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미국 뉴욕의 공화당 대선 유세장에서 활짝 웃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 [AP=뉴시스]

“지난 수개월간 트럼프는 효과적인 선거운동을 했다. 그러나 몇 주 새 그는 자동차를 쫓는 개 신세가 됐다.”

전당대회 1차 투표서 과반 없으면
대의원들 마음대로 투표 가능
당 조직 없는 트럼프 절대 불리

워싱턴포스트(WP)는 11일(현지시간) 공화당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처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거침없는 언행으로 대중적 지지를 얻어 선두를 차지한 그가 대의원 과반 확보에 실패해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주별 경선으로 대의원 70%의 할당을 마무리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가 742명,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이 529명을 확보했다.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에 143명,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 등 중도 포기한 후보들에게 187명이 할당됐다. 이 중 28%의 대의원 선정이 끝났다. 경선에선 주별로 할당된 대의원 수만 정했고, 누구를 대의원으로 뽑아 전당대회로 보낼지는 이제 시작됐다는 얘기다.

통상 대의원은 하원 지역구 회의에서 선정된다. 당 지도부의 입김이 미칠 수밖에 없다. “이기기 위해 필요한 조직을 갖지 못한 것이 트럼프의 실패 이유가 될 것이다”라는 WP의 분석대로 트럼프에게 불리하다. 트럼프가 경선 제도를 강하게 비난하는 이유다.

그는 11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의원 선정은 조작이고 사기”라며 “민주주의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크루즈가 내 대의원을 훔쳐갔다”고도 말했다. 그의 주장의 배경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대의원 선정이 있다.

지난 2월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승리한 트럼프는 승자독식제에 따라 대의원 50명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최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플로렌스·그린우드시에서 치러진 대의원 선정은 경선 결과를 반영하지 못했다. 이 지역에선 대의원 6명을 뽑았는데 트럼프 지지자는 1명뿐이었다. 크루즈 지지자가 3명, 지지 후보 없는 사람이 2명이었다. 이들은 7월 18~21일 공화당 전당대회 때 1차에서는 주별 경선 결과를 반영해 트럼프에 투표해야 한다. 그러나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열리는 ‘중재 전당대회(brokered convention)’에서는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어 트럼프로서는 대의원을 강탈당했다는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득표율을 반영한 대의원 수와 선출된 대의원의 지지 후보가 별개인 공화당 경선제도를 트럼프는 최근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매체 살롱은 지난 7일 “트럼프는 최근까지 전당대회가 어떻게 치러지는지, 대의원은 어떻게 정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트럼프는 경선 제도의 부당성을 적극 알리고 있다. 11일엔 트위터에 자신의 지지자가 공화당원 등록 서류를 불태우는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정치인들이 시민의 투표권을 박탈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민심과 당심의 괴리를 지적하는 한편, 선거 공식을 따르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대의원 사냥꾼’이라 불리는 폴 매나포트 영입이 그 중 하나다.

한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0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e메일 스캔들을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클린턴 전 장관이 e메일 관리상 부주의를 인정했지만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미 의회전문지 더힐은 “중립을 지키던 오바마가 궤도를 이탈했다”고 지적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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