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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돈 풀기만으론 경제 못 살린다는 아베노믹스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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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엔저는 아베노믹스의 핵심이다. 돈을 풀어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야 수출 기업이 살고 소비가 늘어날 수 있다. 그런 다음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체질을 바꾸고 잃어버린 20년을 정리하겠다는 게 아베노믹스의 구상이었다. 엔저를 위해 아베 총리는 중앙은행 총재도 자기 사람으로 바꿨다. ‘돌격대장’으로 불리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다. 구로다는 무제한 돈 풀기로 아베노믹스를 지원했다.

지난 2월엔 사상 처음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다. 극약 처방을 통해서라도 돈을 풀어 인위적 ‘엔저’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환율은 아베나 구로다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달러당 120엔대이던 엔화 가치는 올 들어 가파르게 올라 어제는 107엔으로 18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미뤄지고 세계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엔화가 안전 자산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요 글로벌 금융사들은 연내 100엔 선이 깨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엔저가 사라지면 아베노믹스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엔저→수출 활성화→기업 실적 개선→투자 활성화→임금 상승→소비 활성화의 선순환 구조가 뿌리부터 무너지기 때문이다. 2012년 아베노믹스의 시작으로 지난해 중반 엔화 값은 3년 새 38%나 추락했다. 일본 기업들의 이익이 늘면서 닛케이지수는 같은 기간 9000에서 2만 선을 돌파했다. 하지만 가파른 엔고는 이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고 있다. 구조개혁은 소홀히 하면서 돈을 풀어 경기를 띄운 결과는 결국 ‘반짝 효과’였다는 사실을 아베노믹스가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에겐 반면교사다. 새누리당은 총선 공약으로 ‘한국판 양적완화’를 내놨다. 일본의 양적완화와 달리 구조조정 자금용으로 한정한다고는 하나 돈 풀기는 돈 풀기다. 언제는 돈이 없어 구조조정이 안 됐나. 돈만 풀고 구조개혁을 미루면 결과는 뻔하다. 나랏빚만 늘리고 부실 기업주 좋은 일만 시키게 될 것이다. 구조개혁을 미루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한 일본 꼴이 나지 않도록 구조조정의 고삐를 더 단단히 조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