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했던 파퀴아오의 고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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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파퀴아오 트위터]

복싱 영웅의 마지막은 화려했다. 눈물도, 감동적인 연설도 없었지만 그는 큰 울림을 남기고 링을 떠났다.

8체급 석권에 빛나는 '복싱의 전설' 매니 파퀴아오(38·필리핀)가 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그랜드가든에서 열린 티모시 브래들리(33·미국)와의 세계복싱기구(WBO) 웰터급(66.68kg) 인터내셔널 타이틀전에서 심판 전원일치의 판정승을 거뒀다.

파퀴아오는 이날 폭풍같은 연타와 저돌적인 공격으로 두 차례나 다운을 빼앗았다. 전성기를 연상케하는 화끈한 경기였다. 12라운드가 끝난 뒤 3명의 부심은 모두 116-110으로 파퀴아오의 손을 들었다. 프로복싱 무대에서 21년간 그가 남긴 통산 전적은 58승(38KO)6패 2무승부.

경기 뒤 1만4665명의 관중은 '매니'를 연호하며 복싱 전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파퀴아오는 담담하게 "이제 나는 은퇴한다. 복싱 팬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필리핀 빈민가 출신 파퀴아오는 인간 승리의 표본이다. 그는 13세까지 길거리에서 10센트(약 100원)짜리 도넛을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신부가 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했다. 대신 14세 때 집을 나와 길거리 복싱을 시작했다. 당시 그가 받았던 대전료는 2달러(약 2000원). 파퀴아오는 17세이던 1995년 프로에 데뷔했다. 98년 WBC 플라이급(50.80kg) 챔피언에 올랐고, 이듬해 세 체급을 뛰어넘어 수퍼밴텀급까지 정복했다.

파퀴아오는 2001년 미국에 진출하면서 명트레이너 프레디 로치를 만난다. 지옥훈련을 통해 장기인 속사포 펀치를 연마하면서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오스카 델라 호야(43·미국), 리키 해튼(38·영국) 등 자신보다 체격이 큰 선수를 차례로 쓰러뜨렸다. 2009년엔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를 장식했고, 2010년에는 WBC 수퍼웰터급(69.85㎏) 챔피언에 오르며 세계 최초로 8체급(메이저 6체급)을 석권했다. 지난해 5월 플로이드 메이웨더(39·미국)와 벌인 '세기의 대결'에서는 어깨 부상을 숨기고 싸운 끝에 판정패했다. 메이웨더가 지난해 9월 은퇴하는 바람에 두 선수의 재대결은 성사되지 못했다.

필리핀에서 파퀴아오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영화에도 출연하고 음반도 냈다. 2007년에는 하원의원(임기 3년)에 도전했다 낙선한 적도 있다. 필리핀 국민들이 '파퀴아가 복싱에 전념하길 바란다'며 상대 후보에게 표를 던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기부에도 앞장섰다. 2013년 태풍 하이엔 피해자를 위해 대전료 191억원을 모두 내놨고, 메이웨더와의 경기에서 받은 대전료 1억 달러(약 1100억원) 중 절반도 사회복지기관에 전달했다.

파퀴아오는 정치가로 인생 2라운드를 시작한다. 2010년과 2013년 재선에 성공했던 그는 오는 5월 총선에서 상원 의원(임기 6년)에 도전한다. 복싱을 병행하느라 국회 출석률 꼴찌를 기록하기도 했던 그는 앞으로 정치에 전념할 계획이다. 파퀴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링을 떠났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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