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주화 운동이 완장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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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청와대가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에게 공기업이나 산하단체의 수익사업을 배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민주화운동을 하다 고문과 옥살이 등으로 정신적.육체적으로 장애를 얻고 경쟁사회에 적응할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정부가 여유가 있다면 이들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배려에는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첫째는 형평성이다. 국가를 위해 봉사하다 희생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있는데 유독 민주화 투쟁 그룹만 정부가 챙겨준다면 편파성에 대한 시비가 나올 것이다.

6.25 참전부터 베트남 참전에 이르기까지 국가유공자들도 있고 그 밖에도 소방관.경찰관 등 국가를 위해 일하다가 부상하거나 희생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거들떠보지 않고 민주화운동 관련자만 챙긴다면 참전용사 등 기존 보훈대상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칠 것이다. 민주화 투쟁을 했던 사람들은 이미 보상법에 의해 보상을 받았는데 이중으로 혜택을 준다는 얘기가 나오게끔 돼 있다.

둘째는 효율성의 문제다. 산하단체의 수익사업에 배려한다는데 그런 사업을 이렇게 권력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또 연구기관의 연구원 등으로 채용한다는데 어떤 연구소가 자격이 없는 사람을 아무나 쓸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셋째는 기강의 문제다. 비록 하찮은 자리라 할지라도 그것이 공적인 문제와 연관돼 있을 때 원칙과 정도와 절차에 따라 충원되고 배분돼야 한다. 한 사람에게 주는 특혜는 곧 다른 사람에게는 기회의 박탈을 의미한다.

이런 일이라는 것이 원칙이 없이 정실로 결정하다 보면 그런 분위기가 은연중에 퍼지게 돼 있어 보다 중요한 자리까지 이런 식의 인사에 휩쓸리기 쉽다.

과거에는 군화부대.등산화부대.특정지방 부대가 정권을 이용해 공기관의 곳곳에 스며들었다. 이제는 '민주화 부대'가 완장을 찼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