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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준 진상 규명, 왜 뒷짐 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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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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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주
사회부문 기자

게임업체 넥슨의 비상장 주식에 투자해 10년 만에 대박을 터뜨렸던 진경준(49)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이 사표(2일)를 낸 지 사흘이 지났지만 사건의 여파가 좀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만큼 일반 국민들이 받은 충격이 크다는 얘기다. 현직 검사장이 종잣돈 수억원으로 126억원을 번 게 사실로 드러났다. 기업 수사를 담당하는 보직에 버젓이 근무했음도 확인됐다. 여기다 대학 동창인 게임업체 대표와의 유착의혹마저 제기됐다.

사안이 이쯤 되면 누군가 나서서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 건 당연지사다. 공직자가 신고한 재산의 내역을 검증하는 건 1차적으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몫이다. 공직자윤리법에 그 권한이 명시돼 있다. 일단 ‘책임 있는 당국자’인 윤리위는 지난 1일 조사 착수 방침을 밝혔다. 4일에도 “이미 진 본부장이 신고한 내역에 대해 사실관계가 맞는지 심사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조사 내용은 신고한 재산과 현재 보유한 재산이 맞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10년이나 지난 재산 형성 경위를 자세히 조사한 전례가 없다고 꼬리를 달았다. 특히 “현직 신분이라면 강도 높은 조사가 가능하지만 민간인이 되면 소명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아도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진 본부장의 사표가 수리되면 진실규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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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런 가운데 또 다른 책임 있는 당국자인 법무부는 재산등록에 대한 심사 권한이 공직자윤리위에 있어 윤리위가 심사 후 조사를 의뢰하면 법무부가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진 본부장의 사표 수리에 대해서도 “현직에 있든, 민간인 신분이 되든 공직자 시절에 등록한 재산에 대해서는 공직자윤리위가 심사 과정에서 협조하지 않으면 죄를 물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표를 수리해도 공직자윤리위가 조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의 설명처럼 공직자윤리법에는 재산신고자는 물론 그 주위 인물들이 신고사항을 검증 시 거짓 자료를 제출하거나 조사 출석에 불응할 경우 최고 징역 1년형까지 처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공직자윤리위의 의지가 중요한 건 맞다.

그렇다고 법무부가 뒷짐만 지고 있는 건 무책임한 자세다. 법무부에도 ‘언론 등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항’에 대해 자체 감찰 권한이 있다.한 원로 변호사는 “진 본부장의 사표를 이대로 수리하고 진실 규명의 책임을 공직자윤리위에만 떠넘긴다면 법무부는 ‘제 식구를 감쌌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두 기관이 각자 보유한 조사 및 감찰 권한 행사를 계속 소극적으로 한다면 공직사회의 또 다른 ‘복지부동(伏地不動)’ 사례로 기록될 수도 있다.

문병주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