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ISA에 밀려 '찬밥'된 재형저축, 누가 책임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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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
경제부문 기자

“근로자가 봉이냐.”, “다음엔 연 1%대로 내리겠네.”

시중은행이 별다른 설명 없이 지난달 4일 근로자 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 금리를 최대 연 1.5%포인트 내리자 가입자들이 인터넷·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내놓은 반응이다. 이 상품은 지난해 말 조세특례제한법상 일몰 기간(3년)이 끝나 올해부터 신규 가입을 받지 않는다. 이번 인하는 총 7년 가입기간(고정금리 3년, 변동금리 4년) 중 고정금리 기간 3년이 끝난 데 따른 조치다. 이로 인해 지난 3년간 연 4%대였던 금리는 연 2.5~2.8%로 내려앉았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금리 인하폭은 은행이 알아서 정하는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런데 가입자들은 금감원의 태도에 대해 “무책임하다”며 비판의 날을 세운다. 3년전 재형저축 출시에 대대적으로 드라이브를 건 주체가 금융당국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인 2013년 1월 “재형저축과 관련해 가능한 빨리 법적 검토를 취해 달라”고 하자 금융위원회는 서둘러 ‘연소득 5000만원 이하 근로자가 7년 가입하면 비과세 혜택을 준다’는 내용의 세부안을 마련했다. 금융감독원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은행권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3월 출시를 독려했고, 각 은행은 당시 예금(연리 3.5%)보다 1% 포인트 높은 연 4.5% 안팎의 금리로 화답했다.

그러나 장기 납입에 대한 부담으로 해약하는 이들이 늘면서 한 때 163만명이었던 가입자 수는 지난해 145만명으로 줄었다. 이후 금융위는 올해 ‘만능통장’ ISA를 출시하는 대신 재형저축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재형저축 가입자가 ISA에 밀려 ‘찬밥 대접’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은행들이 ISA 우대금리를 주기 위해 재형저축 금리를 크게 깎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래서는 금융정책이나 상품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자칫 정부 정책으로 탄생한 금융상품이 ‘한탕주의식 실적 올리기’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판매 중단된 금융상품이라도 기존 가입자가 있는 한 금융당국이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금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은행 팔을 꺾으란 얘기가 아니다. 미리 금리 인하폭을 예고하고, 그렇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노력만으로도 최소한의 신뢰는 지킬 수 있다. 이런 신뢰가 쌓여야 재형저축뿐만 아니라 ISA 투자자도 금융당국을 믿고 장기투자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ISA 역시 3년 뒤 일몰시한이 끝난 다음 재형저축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태경 경제부문 기자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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