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중독자에서 아들바보된 한 남자의 인생에서 배울 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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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만 해도 그는 악명 높은 픽업 아티스트였다. 픽업 아티스트란 여성을 유혹하는 특수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데, 그는 그 중에서도 일류에 속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아이를 목욕시키고, 한 여자에게 충성하는 가족적인 남자의 표본이 돼 있다. 대학시절까지 샌님이었다가, 픽업 아티스트로 화려한 삶을 산 뒤 이젠 가족에 충실한 인생을 시작한 이 남자, 대체 뭘 겪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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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트라우스 [사진 = DollyDecadence]

닐 스트라우스,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저널리스트 출신의 카사노바다. 2005년 내놓은 『더 게임』이라는 책 한 권이 돌풍을 일으켰다. 250만부가 팔렸고, 한 달 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전세계에 ‘픽업 아티스트’라는 말을 전파시켰고 붐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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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Amazon.co.uk]

책은 여자를 유혹하는 방법을 시시콜콜 알려주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더 많은 여성과 잠자리를 가질 수 있는 노골적인 방법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예를 들면 이런 기법들이다.

네깅(negging): 관심없는 척해서 여성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 흥미를 끄는 방법.
케이브매닝(caveman-ing): 직접적이고 공격적으로 타깃 여성과의 신체 접촉의 수위를 확 높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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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seagul]

스트라우스는 여심을 훔치는 비법을 타고난 사람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무도회를 홀로 구석에서 보냈고, 대학 시절에도 줄곧 ‘모태 솔로’였다.

그래도 글재주는 있어서 뉴욕타임스와 음악전문잡지 롤링스톤의 저널리스트가 됐다. 글재주가 있어도 여전히 주변에 여자는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하면, 인터넷 창에 ‘결혼 대행업체’ 사이트를 열어놓고 여자들을 구경하는 걸 낙으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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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스트라우스 [사진 = Justin Hoch]

“이거 참, 부끄러운 말인데. 사실 내가 그때까지 여자랑 가장 길게 얘기해 본 건 동네 미용실이 전부였어요.”

사실 그의 외모는 수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키도 훤칠하지 않고 머리숱도 없다.

그런데 인생 한방이라더니,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의 글솜씨를 눈여겨 본 영국저명 출판사 하퍼콜린스의 에디터가 픽업 아티스트에 대한 책을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 그것이 그를 ‘어둠의 세계’로 이끌었다. 샌님이었던 그를.

주제는 그의 흥미를 확 끌어당겼다. 긴 시간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었다. 모태 솔로라면 도무지 안 그럴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그는 인터뷰에 특화된 저널리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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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Concord90]

책 취재로 만난 픽업 아티스트들은 제2의 인생의 스승이 돼줬다. 처음엔 바에서 여자에게 말 거는 것도 두려워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수줍음을 극복하고 기술을 익히자 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넘어갔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유혹했다는 전설같은 얘기도 돌았다. 따분한 대머리 남자가 능수능란한 화술의 카사노바로 거듭난 것이다.

그렇게 5년을 지낸 어느 날. 스트라우스는 멕시코 출신 모델인 잉그리드 델라오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완벽했고, 지금껏 만난 그 어떤 관계보다 만족스러웠어요.”

하지만 제 버릇 남 주지를 못했다. 델라오와 만나면서도 다른 여자를 쫓아다녔고, 심지어 그녀의 친구를 유혹하기도 했다. 마음이 넓은 델라오는 그를 용서했다. 단, 하나의 조건을 달았다. ‘재활센터에 들어가 섹스 중독 치료를 받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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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valeropardo]

재활센터에 들어가 전문치료사의 지도에 따라 마음을 들여다본 그는 충격을 받았다. 불안장애, 우울증, 섹스중독, 주의력 결핍장애 진단을 받았다. 마음은 엉망진창이었다.

3개월 뒤 재활센터에서 나왔지만 당분간 안정을 찾지 못했다. 델라오에게 돌아갔지만 2주 뒤 다시 헤어지고 말았다. 환락의 세계에 너무 깊이 발을 들인 탓에, 그것없인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는 다시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라스베이거스의 쇼걸과 실리콘밸리의 사업가를 유혹했다. 유럽의 문란한 파티에 참가했고, LA에선 세 명의 여성과 한 집에서 동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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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부 해변가 [사진 = PublicDomainPictures:]

불과 5년전까지만 해도 방탕한 삶을 살던 그는 지금은 말리부의 은신처에서 아내ㆍ아들과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의 그는 둘도 없는 애처가에 아들 바보다.

“그건 이런 것과 같아요. 들어보세요. 다섯살 땐 벌거벗고 밖을 뛰어다녔던 것이 아무렇지 않았지만, 10살이 되면 부끄럽죠. 한살 땐 바지에 똥싸는 게 당연하지만 다섯살이 되면 부끄러워요. 나는 항상 5~10년전에 한 일에 대해 부끄럽고 후회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그게 바로 내가 성장하고 변했다는 증거니까요.”

어느 날 헤어졌던 옛 연인 델라오와 한 결혼식장에서 만난 뒤, 다시 그는 그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몇 차례의 치료와 심리 분석도 도움이 됐다.

”제 옛날 모습은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것뿐이었어요. 어떻게 그녀를 침대에 눕힐까, 남자친구를 버리고 나에게 오게 할까, 그런 생각만 했죠. 심지어 일때문에 만났을 때도 전화번호를 따려는 생각 뿐이었어요.”

하지만 몇몇 경험들은 그가 자신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됐다. “바에서 한 여자가 나를 유혹했어요. 사냥꾼처럼 살다가 먹잇감이 되는 건 특이한 경험이죠. 그건 뭐랄까, 매우 ‘교육적인 경험’이었어요. 제가 책에서 가르친 것이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려주는 첫 경험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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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곰인형 [사진 = cherylholt]

지금 그는 여자를 유혹하는 기술『더 게임』을 “남자의 두려움에 관한 책”이라고 말한다. 여자에게 거절당할까 두려워하는 남자들에게 잘못된 방식으로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줬다고 말한다. 픽업 아티스트들은 매력으로 여자의 마음을 빼앗는 상남자가 아니라 거절당할까 두려워 잔재주를 익히는 불쌍한 어린 소년일뿐이란 세간의 비판은 적확한 셈이다.

“내 책을 읽은 남자들은 여자를 몇몇 기술에 혹해서 넘어가는 바보로 알고 있어요.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은 당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을 정도로 똑똑해요. 단지 그들은 그 정도는 넘어가 줄 정도로 당신에게 호감이 있을 뿐입니다. 제가 보기에 가장 큰 착각은, 누군가를 속여서 그들이 원치 않는 일을 하게끔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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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먹 [사진 = Tolea1]

남자들에게 여자를 침대로 끌어들이는 방법에 대한 특강을 열던 그는 이제 어떻게 더 나은 남자가 되느냐에 대한 세미나를 연다. 섹시한 수트를 입던 그는 지금은 후줄근한 티 하나에 슬리퍼를 끌고 다닌다.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보내던 화려한 오후와 환락의 밤 대신 나른한 오후와 포근한 밤시간을 즐긴다.

최근 그가 주최하는 세미나는 남자들이 여자를 유혹하지 않고도 충만하고 자신감 있는 존재가 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 “예전엔 어떤 아름다운 여자가 나와 만나는 걸 승낙할 때에야 성공한 거라고 가르쳤어요. 지금은 다릅니다. 여자가 나에게 반응을 안 한다고 해서 내가 실패한 건 아니죠. 내가 스스로에게 만족하기 위해 다른 수단은 필요치 않아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의해 스스로를 평가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진실은 간단해 보이지만, 그걸 진정으로 깨닫는데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그의 인생은 말하고 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 깊이 깨닫는 건 10년의 세월로는 쉬이 건널 수 없는 틈이 있으니까.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이 기사는 가디언ㆍ애틀랜틱ㆍ넥스트샤크 등 외신에 소개된 닐 스트라우스의 기사를 종합해 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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