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해야할 선거사범단속|제정갑 사회부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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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당보를 나눠주는 게 무슨 잘못입니까. 연행된 당원들을 즉시 풀어주시오.』
『당보를 당원이외의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렇다면 왜 야당만 단속합니까.』
『여당도 단속을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당원이 모두 26명이나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야 선거운동이고 뭐고 하지 말란 말 아닙니까. 차라리 후보를 사퇴하고 선거운동을 그만두겠습니다.』
『…선거법이 있으니 단속을 안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서로간에 융통성을 발휘해 보십시다.』
투표를 사흘 앞둔 9일 상오9시40분쯤 서울 성북경찰서 서장실에서 이지역 모 야당의 L후보와 박노영 서장이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L후보는 이날 거리에서 당보를 나누어주던 당원5명이 경찰에 연행됐다는 급보에 경찰서로 달려온 길이었다.
L후보가 박 서장과 담판 중이던 9시50분쯤 L후보의 당원들은 경찰의 「융통성발휘」로 연행30분만에 파출소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잇단 선거운동원 연행을 「의도적인 야당탄압」 이라고 주장한 L후보측 운동원 60여명은 상오11시쯤 성북경찰서로 몰려들어 2층 정보과 앞 복도에서 서장의 공식사과와 이후 같은 사태의 재발방지보장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3시간만인 하오2시5분쯤 박 서장의 해명을 듣고서야 운동원들은 경찰서를 떠났다.
온통 제약과 규제뿐인 현행 선거법 아래서 경찰의 선거사범단속이 형평을 잃고있다는 비난이 야당 쪽에서 높다. 야당은 경찰이 야당탄압을 넘어 유례없는 행정선거의 파수꾼노릇을 하고있다고까지 지탄을 보내고 있다.
과연 사실일까.
우리는 우리국민의 일원이며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우리의 경찰이 야당의 주장처럼 특정정당을 위한 행정선거의 파수꾼 노릇을 하리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공화국수립 후 40년 동안 권력의 부침과 영욕의 교차롤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가장 밀도 있게 체험하면서 「민중의 지팡이-민주경찰」을 의식화·체질화 하고있는 경찰이 민의를 확인하는 선거에 적어도 본분을 벗어나는 간여는 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며칠 전 경찰이 밝힌 선거사범 단속 실적은 납득이 잘 안가는 데가 있다.
1월20일부터 2월8일까지 적발한 3백17건 4백61명의 선거사범을 정당별로 가려보면 신민한이 1백12건으로 으뜸을 차지하고 민한당이 98건, 국민당이 21건 등 야당이 99%에 해당하는 3백14건을 차지한 반면 여당인 민정당은 단3건에 4명뿐이었다.
이 통계대로라면 민정당은 거의 1백% 법을 지켜 선거운동을 하고있는데 야당은 온통 탈법을 일삼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를 믿을 시민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서울지검산하에서만 야당 측에 의해 내무장관·경찰서장이 고발당한 사례가 5건이나 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현행의 까다로운 선거법 때문에 선거운동이 「범법사태」를 빚고있는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마다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은 눈이 있고 귀가 있는 시민들이 그 동안 보았고 지금도 듣고있는 바다.
문제는 선거법 규정을 축조 집행해 단속을 할 것인가, 선거분위기를 위해 융통성을 보일 것인가 방침결정일 뿐이다.
만일 단속을 하면서 어느 정당에는 선거법을 자구 그대로 축조 적용하고 어느 정당에는 한 없는 융통성을 발휘한다면 이는 결코 공정한 선거관리가 아니다.
공정하지 않은 선거에서 참다운 민의의 결집되지 않은 선거 후 결과에의 승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새로운 불안의 불씨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이번 선거를 「국민의 축제」로 승화시켜 공정하게 치르겠다고 거듭 거듭 다짐하고있다.
행여 경찰의 「충성」 이 잿밥에 코 빠뜨리는 일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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