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끊은 담배 다시 문 김종인 “날 욕심 많은 노인 만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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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무를 거부 중인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1일 오후 서울 구기동 자택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 “비례대표 2번을 내가 큰 욕심이 있어서 한 것처럼 인격적으로 사람을 모독하면 죽어도 못 참는다”며 “사람을 이따위로 대접하는 정당에 가서 일해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21일 오전 9시쯤 노타이 차림으로 서울 구기동 자택을 나섰다. 캐주얼 정장을 입은 김 대표가 향한 곳은 국회가 아니라 광화문 개인사무실(대한발전전략연구원)이었다. 그는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던 기자에게 “여기 들어와 앉아요”라고 권한 뒤 담배를 꺼내물었다. 연달아 세 개비를 피웠다. 직원 말로는 3년만에 피우는 담배라고 한다. 그는 특유의 돌직구 발언으로 ‘비례대표 2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당 중앙위원들을 비판했다. “나를 욕심많은 노인네로 만들었다. 죽어도 못 참는다”고 말했다.

중앙위에 친노 패권주의가 남아 있다고 보나.
“패권주의고 뭐고, 패권을 행사하려면 똑똑히 하라고 해. 그따구(그따위)로 하지 말고. 내가 자기네들한테서 보수를 받고 일하는 거야 뭐야. 자기네들 정체성에 맞지않다는 게 핵심인데…. 어제 저 꼴을 해서 표를 얼마나 깎아먹을지 알아?”
당 사람들은 대표가 비례대표 말번에 배수진을 치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더라.
“그게 무슨 배수진이 돼. 내가 이거 하고 싶어서 했다고 생각하시오? 4·13 총선 이후 내가 딱 던져버리고 나오면 이 당이 제대로 갈 거 같아?”
비례대표 후보들에 대해 논란이 있다.
“자, 내가 얘기해 줄게. 1번 택한 사람(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왜 택했는지 알아요? 요즘 무슨 알파고인가 가지고 뭐라 하는데 인공지능이니 뭐니 세계경제가 이런 쪽으로만 가는 거 아니야. 컴퓨터나 뭐나 전부 다 수학하는 사람들이 하는 거야.”
일각에선 대선에 출마하려 한다고 의심한다.
“뭐를 한다고?”
대선을….
“웃기는 소리 말라고. 내가 개인적으로 이 사람 공천해 달라고 한 것 하나도 없어. 공천위원들에게 물어보셔.”

김 대표가 당무를 거부하는 사이 박영선 의원 등 비상대책위원들은 중재안을 마련하느라 긴박하게 움직였다. 비대위는 김 대표가 본인을 포함해 7명의 후보 순번을 정하게 하자는 방안을 마련해 오후 8시 30분부터 중앙위에서 논의를 시작했다. 이 방안은 김 대표에게도 전달됐다고 김성수 대변인이 전했다.

연달아 3개비 피우며 기자에게 토로
중앙위 “본인 순번 결정하라” 위임
중재안 들은 김 대표 “알았다”

7명에는 1번 박 교수와 최운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6번),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 문미옥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실장, 김 대변인, 이수혁 전 6자회담 수석대표, 김 대표가 포함됐다. 중앙위에서는 당헌에 따라 당선안정권의 20%인 4석의 순번 결정권을 김 대표에게 주고, 나머지는 노동·청년·취약지역 등 당헌상 배치하도록 돼 있는 인사로 채우자는 의견이 나왔다. 나머지는 중앙위원들의 투표로 정하도록 했다.

이 와중에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문재인 전 대표와 연락을 취해 중재 역할을 했다. 손 위원장은 회의에서 김 대표가 추천한 인사는 박 교수와 본인, 최 교수 등 세 명뿐이고 나머지 후보들은 문 전 대표와 일부 비대위원 등이 추천했다고 공개했다. 이로 인해 김 대표에 대한 반발이 누그러졌다고 당직자들이 전했다. 중앙위에서는 또 김 대표가 스스로 몇 번을 택할지를 김 대표에게 맡기기로 했다. 밤늦게 이 같은 결과를 전해들은 김 대표는 “알았다”고 말했다고 김 대변인이 전했다. 김 대표 측 관계자는 “내일(22일) 당무에 복귀할지는 알 수 없다”며 “다만 당에서 김 대표의 명예를 실추시킨 데 대해 공식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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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와의 악연=김 대표는 이날 “13대 총선 때 김대중 대통령이 비례대표 11번을 할 때 내가 체험했다. 그분이 ‘대통령 선거에 떨어지고 돈이 없어 전국구 앞번을 못 받았으니 평민당 여러분이 안 찍어주면 국회도 못 간다’고 하더라. 난 그런 식으로 정치 안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사석에서도 “1988년 총선 때 서울 관악을에 민정당 후보로 출마했는데, DJ가 비례대표 말번의 배수진을 치고 유세를 세 차례나 오는 바람에 당시 평민당 이해찬 후보에게 패했다”고 말했다.

안효성·이지상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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