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총책이 모멸감 줘” 대졸 부하 배신에 조직 무너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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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원 조모씨가 불법 선물도박 사이트 ‘D트레이드’ 가입자들에게 경찰을 사칭해 보낸 문자메시지(왼쪽). 조직 총책 김모씨가 자택 금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압수당한 5만원권 현찰 3억여원.

지난해 10월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IT금융범죄수사팀(현 사이버테러 수사2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이는 다짜고짜 “‘D트레이드’라는 인터넷 선물거래 사이트를 단속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경찰관이 “아는 바가 없다”고 답하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 이후 며칠간 같은 내용의 전화 문의가 수사팀에 수시로 걸려 왔다.

코스피 등락 예측해 베팅하는
불법 선물 도박사이트 운영 조직
46억원 수익 올리며 승승장구

수사관들은 괴이한 일이라는 생각에 경위 파악에 나섰다. 같은 내용의 전화를 걸어 온 이들에게 까닭을 물었지만 좀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제보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설득작업을 해 몇몇으로부터 D트레이드라는 불법 선물거래 도박 사이트에 대해 알게 됐다. 통신내역 조회로 사건의 단초가 된 문자메시지의 발송자도 확인했다. D트레이드와 관련한 자금 이동 상황도 파악했다.

D트레이드는 코스피200지수의 등락을 예측해 돈을 거는 도박 사이트였다. 지수의 상승과 하락을 택해 투자한 뒤 실제로 맞으면 돈을 따는 방식이었다. 이 사이트를 통해 오고 간 금액은 145억원에 달했다. 경찰은 D트레이드의 사장 겸 총책인 김모(42)씨와 콜센터를 관리한 이모(35)씨 등 두 명을 구속하고 콜센터 직원 등 1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1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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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결과 김씨는 2014년 10월 서울과 경기도에서 오피스텔을 빌려 서버를 설치하고 D트레이드 사이트를 만들었다. 이듬해 2월 B인터넷 증권방송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입자를 모았다. 증권방송 시청자에게 D트레이드 소개 e메일을 대량으로 뿌려 가입을 유도했다. 500만원 상당의 사이버머니를 주는 점을 내세우자 600여 명이 가입했다.

김씨 일당은 검거 전까지 이 사이트를 운영하며 46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가입자들이 투자로 손실을 본 액수에서 이익을 본 액수를 뺀 돈이 이들의 수익이 됐다. 이들은 수익을 늘리기 위해 위해 코스피200지수의 등락을 잘 맞혀 고수익을 내는 회원이 나오면 “불법 사이트라 단속될 우려가 크다”며 탈퇴를 유도했다. 이익금은 출금해줬지만 ‘진상고객명단’을 만들어 이들이 다시 가입하지 못하도록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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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등의 간부급은 한 달에 1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콜센터 직원도 매달 450만원씩 월급을 받았다. 김씨는 이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아파트 두 채를 새로 샀다. 이달 초 검거 당시 경기도 고양시의 김씨 집에서는 5만원권을 120장씩 묶은 현금 다발 52개(3억1200만원)가 발견됐다. 신용불량자라서 은행을 이용할 수 없었던 김씨가 금고에 넣어둔 돈이었다. 그는 수사관들이 들이닥치자 5만원권 다발을 내밀며 “봐달라”고 사정했다. 이 과정은 현장에 출동한 수사관들이 착용한 웨어러블 카메라에 고스란히 녹화됐다.

이들의 ‘사업’은 김씨에게 앙심을 품은 조직원 조모(40)씨의 이탈로 파국을 맞이했다. 대학 졸업 후 한때 사법시험을 준비했던 조씨는 고졸인 총책 김씨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지난해 10월 조직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경찰청 홈페이지에서 본 IT금융범죄수사팀을 사칭해 D트레이드 회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김씨가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에 조씨가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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