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 이화여대의 6배 서울대, 논문의 질은 98계단 뒤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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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김준모(50) 교수는 2008년부터 6년간 학생연구원 14명의 인건비 6억8000만원을 빼돌려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횡령)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조사 결과 김 교수는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학생연구원의 인건비를 주식 투자나 명품시계·가방을 사는 데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 4585억 정부 지원 최대
우수 논문, 포스텍 등에 밀려
개인 용도 사용 등 비리 적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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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가 매년 수천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고도 이를 불투명하게 집행하는 등 ‘모럴 해저드’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해마다 전국 223개 4년제 대학에 지급되는 중앙정부 연구비 총액(약 4조원)의 10% 이상을 받으면서도 연구 실적은 그에 못 미친다는 비판도 거세다.

실제 서울대는 매년 정부 부처 및 산하 기관으로부터 4500억~5000억원의 연구비를 받고 있다. 대학정보공시 시스템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14년 서울대에 지급된 연구비는 4585억원으로 2위인 연세대(2365억원)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하지만 막대한 지원에 비해 연구 실적은 낮다.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이 해마다 인용 빈도가 상위 10%인 논문의 비율로 순위를 매기는 ‘라이덴 랭킹’에서 서울대는 지난해 544위를 기록했다. 2010~2013년 발표한 총 1만3249편 중 인용 빈도 상위 10%에 드는 논문의 비율은 7.4%에 머물렀다. 이화여대의 경우 정부 지원 연구비 총액(741억원)은 서울대의 6분의 1 수준이지만 라이덴 랭킹은 446위로 서울대보다 더 높다.

티머시 헌트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등 세계적 석학들은 최근 발표한 ‘서울대 자연대 평가보고서’를 통해 “(연구 실적이) 이대로라면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는 서울대와 연세대·고려대·KAIST·포스텍 등 5개 대학이 연구업적 평가의 잣대를 ‘정량평가’에서 ‘정성평가’로 바꿔야 한다는 공동 선언문을 조만간 내기로 합의한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방 국립대의 한 교수는 “그간 양적 평가를 통한 과실을 독점해 온 것은 서울대였다”며 “서울대가 지금의 연구생태계 악화를 야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교수들 사이에서도 평가 방식 개선보다 연구비 집행 등의 투명성 제고가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달 36개 국·공립 대학을 대상으로 발표한 종합청렴도 평가에서 서울대는 10점 만점에 5.44점으로 32위에 머물렀다. 특히 ‘연구 및 행정 분야’에선 33위(5.01점)로 최하위권이었다.

최근 서울대 대학원에선 일부 교수가 연구비를 공동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연구원들에게 개인 통장과 비밀번호를 넘기라고 요구해 잡음이 나오고 있다. 이정재 전 서울대 교수협의회장은 “연구비 집행의 불투명성은 서울대 전반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연구비 집행을 위한 외부 전담기구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대학기업 매출액 베이징대의 0.1%=정근식 사회학과 교수 등 서울대 교수 4명이 최근 대학 기획처에 제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대가 육성하는 대학기업의 연간 매출(154억원·2014년 기준)이 중국 베이징대 대학기업 연간 매출(769억 위안·약 14조원·2013년 기준)의 0.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진우·윤정민·백수진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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