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받는 사람을 속이지 말고 신사답게 수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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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첫 번째 덕목은 인간에 대한 애긍심(哀矜心·측은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열정과 정의감은 그 다음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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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3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치고 서울 서초동에 변호사 사무실을 낸 강찬우(53·사법연수원 18기·사진) 전 수원지검장은 18일 ‘검사 생활에서 배운 게 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유병언 사망’수사 강찬우 전 지검장
23년간 검사 생활 마치고 새 출발
“열정·정의감보다 애긍심이 중요”

그는 초임 시절 겪었던 뼈아픈 경험을 소개했다. 1996년 수원지검 성남지청 근무 때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서 구속 송치된 여성 사건을 맡았다. 혈흔을 검사하는 루미놀 반응, 부검의 소견이 똑같이 부인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어 그도 처음엔 부인이 진범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기소 직전 남편이 추락한 사고 현장이 뒤늦게 발견됐다. 원점에서 재수사해보니 단순 사고사였다. 그는 부인을 석방할 때 가족까지 불러 머리 숙여 사과했다고 한다.

강 전 검사장은 이후 대검 중수3과장, 대검 반부패부장(옛 중수부장) 등 특수수사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중요 사건 수사에 자주 투입되며 ‘조직의 구원투수’‘소방수’로 불렸다. 2010년 검찰내 첫 특임검사로 임명돼 이른바 ‘그랜저 검사’ 사건을 재수사한 뒤 사건 무마 청탁에 개입한 정모 전 부장검사를 사법처리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 실패로 사임한 인천지검장의 직무대리로 ‘뒷수습’을 했다. 강 전 검사장은 “후배 검사들이 ‘신사다운 수사’를 했으면 한다”며 “어떤 경우에도 조사 받는 사람을 속이지 않아야 하고 별건수사·보복수사의 유혹에 빠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유 전 회장 사건과 관련해 그는 “당시 특별수사팀 발족 이후 검사들이 방마다 야전 침대를 놓고 ‘내일은 없다’는 각오로 수사했다”며 “그런 노력이 유 전 회장의 사망으로 한순간에 묻힌 게 안타깝다”고 기억했다. 인천지검장 직무대리로 부임하자마자 “전 수사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으로 남기라”고 지시해 백서를 만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강 전 검사장은 “기업 범죄와 금융 사건 등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 집중해 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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