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제재 해봤자 실효성 없고…김여정, 뭘 하는지 공식 확인 안 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기사 이미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지난달 7일 김여정(원 안)과 광명성 4호 발사를 보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정부가 8일 발표한 독자적 대북 금융제재 대상자 명단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여동생인 김여정 등 ‘백두혈통’은 빠졌다. 이에 대해 제재의 실효성과 제재 대상 범위에 대한 기술적 판단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라고 복수의 정부 당국자들은 전했다.

‘백두혈통’이 대상서 빠진 까닭
정확한 범죄행위와 증거 있어야

우선 고려된 것은 이번 금융제재의 실효성에 따른 손익 계산이다. 금융제재 대상에 포함될 경우 우리 금융사 및 개인과의 거래가 금지되고 한국 내 자산도 동결된다. 하지만 김정은은 국내에 보유한 자산도 없고 금융거래도 전무하다. 게다가 그는 이미 국제적으로 핵·미사일 개발의 책임자로 공인된 상황에서 굳이 리스트에 포함시킬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여정의 경우 노동당 서기실장을 맡아 핵·미사일 개발 자금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제재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고려했다. 실제 지난달 7일 김여정은 김정은과 함께 장거리 미사일 발사 현장을 참관했다. 이는 그가 핵·미사일 개발에 관여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김여정의 직함이나 상세한 업무 등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제재 대상에 이름을 올리려면 정확한 범죄행위와 그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비롯해 직책·나이·신상 등 개인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김여정은 모호한 케이스”라고 말했다. 인하대 김연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제재 대상으로 특정하려면 범죄를 구체적인 증거로 입증해야 한다”며 “김여정에 대해서는 심증은 확실하지만 입증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나 미국·일본 등의 단독 대북제재에 김정은·김여정이 오르지 않은 것도 감안됐다고 한다. 독자 제재 결정 과정에 관여한 정부 소식통은 “이번 제재는 우리 정부의 독자 제재로는 처음으로 북한 개인·단체를 지정한 것으로, 지금까지 나온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와 (미국 등의) 단독 대북제재를 참고해 보수적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2270호나 미국의 독자 제재도 김정은과 김여정을 적시하지 않은 점을 고려했다는 의미다. 우리 정부가 나름대로 북한을 응징하기 위해 강력한 독자 제재를 내놓긴 했지만, 국제사회의 행보보다 지나치게 앞서나가지는 않겠다는 의도다. 여기엔 북한과의 최소한의 대화 여지는 남겨놓겠다는 정무적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국책연구소 고위 관계자는 “미국도 제재 대상으로 올리지 않은 김정은을 우리 정부가 정조준하는 것은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며 “북한의 5월 당 대회 이후 있을 수 있는 국면 전환 가능성 등을 감안한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그러나 8일 제재가 끝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통일부 관계자는 “8일 발표는 시작일 뿐”이라며 “앞으로 필요할 경우 제재 대상을 계속 추가해 나갈 것이다. 김정은·김여정도 여전히 그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