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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구글·애플이 탄생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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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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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재 법무부 차관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건강에 쏠려 있다. ‘백세인생’이라는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만 봐도 그렇다.

한국 중기·벤처들의 지적재산권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
정부의 제도 정비와 법률 지원
기업의 자발적 노력 어우러져야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사람들은 단순히 운동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손목시계형 운동량 측정기를 통해 자신의 운동량, 심박수, 섭취 및 소모 칼로리 등을 구체적으로 측정해 기록하고 운동량의 목표를 설정해 체계적으로 건강을 유지한다. 우리는 건강을 디자인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 제임스 박은 이미 9년 전에 이런 트렌드를 간파하고 운동량 측정기를 전문으로 하는 핏빗(Fitbit)을 창업했다. 현재 연 매출 9000억원 규모의 운동량 측정기 분야 1위 업체로 성장했다. 운동량 측정기에서만큼은 애플·나이키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의 매출을 상회한다. 연간 2000만 대 이상의 운동량 측정기를 팔아치우고 있다.

 제임스 박이 한국에서 창업했더라면 결과가 어땠을까. 핏빗의 핵심 기술이 사업 초기에 유출되거나 무단으로 복제돼 기업이 제대로 성장이나 했을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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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제임스 박 못지않은 열정과 실력을 갖추고도 환경이 미비해 기회를 잃고 마는 중소기업이 많다. 국내에서 지식재산권 침해를 경험한 중소기업의 비율이 2012년 4.3%에서 2014년 7.0%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건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렇다 할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국가 발전의 유일한 원동력은 기술력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 침해를 그대로 방치한 채 미래 발전 동력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이제는 정보기술(IT), 벤처기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세대가 살아갈 토양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지식재산권을 제대로 보호해야 할 때다.

 지식재산권은 국가산업의 근간이 되는 고도의 첨단기술부터 상표, 디자인, 문학, 음악, 미술작품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우리의 삶과 너무나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 알게 모르게 그 권리를 해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따라서 우리가 그 권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부·기업·소비자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먼저 정부는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보호제도와 법률지원을 확대하고, 관련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한 중재·조정제도 등 제도적 장치를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중소기업에 기술력은 그 기업의 모든 것이다. 특히 분쟁 발생 시 해결 시간이 더딜수록 기업의 생존에는 치명적이다.

  최근 법무부가 변리사를 검찰의 ‘특허수사자문관’으로 채용하고, 대전지검을 중점검찰청으로 지정한 것도 검찰의 전문성 제고를 통해 중소기업의 특허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정부가 ‘창조경제혁신센터 법률지원단’의 자문변호사 증원을 통해 벤처기업에 대한 법률지원을 확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음으로, 당사자인 중소기업 스스로의 역량 강화 노력이 필요하다. 지식재산권 전담 직원 채용을 늘리고 임직원에 대한 지식재산권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가 아무리 기술보호제도와 중재·조정제도를 마련해 놓더라도 해당 기업이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보다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중소기업들은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영업비밀에 대한 원본증명제도’ 등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정부 역시 중소기업들이 제도를 잘 몰라서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유용한 제도의 존재를 알리고 이를 활용토록 돕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비자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 결국 생산된 결과물을 최종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도 기업이 노력해 만든 상품의 가치를 인정하고 소중히 여겼으면 한다. 자칫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적재산권을 침해할 수도 있으므로 늘 시장의 감시자, 스스로의 감시자가 되어 우리의 소중한 재산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데 동참해야 할 것이다. 내가 지켜낸 소중한 기술이 나의 일자리, 내 아이의 일자리를 만들고, 새로운 기술 개발을 위한 터전을 만들어갈 것이다.

 이처럼 경제 주체인 기업과 소비자, 그리고 정부가 함께 노력해야 우리의 미래 먹거리이자, 국가 발전의 원동력인 소중한 기술들이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다. 또 핏빗과 같은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나타나 우리의 미래를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농부들은 매년 뜨거운 뙤약볕 속에서 일손을 재촉하고, 그 덕에 우리의 식탁은 더욱 풍성해진다.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피땀 흘려 개발한 기술이 보호된다는 ‘믿음’이 없다면 그들은 더 이상 기술개발에 땀 흘리지 않을 것이며, ‘기술강국 대한민국’은 추억 속으로 사라져버릴지 모른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중소기업과 정부가 다 함께, 땀이 보상받는다는 소박한 ‘믿음’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해 나간다면, 바로 지금이 ‘중소기업을 위한 기회의 땅, 대한민국’으로 거듭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창재 법무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