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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새 틀 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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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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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
전 주일대사

새해 벽두부터 북한은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동북아 전략 지형을 뒤흔드는 도발을 했다. 진앙은 불량국가 북한인데 그 쓰나미는 동북아가 덮어쓰는 이상한 형국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협의를 개시하고 개성공단 운영을 전면 중단하는 강한 압박조치들을 취했다. 이런 조치의 시기·정도·방법상에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북핵 문제 해결 기회의 창이 빠르게 좁아지는 현실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제는 강한 압박을 통해 북한이 핵·경제 병진정책을 포기하는 전략적 결단을 하게 해야 한다.

생존 위협할 만큼 강한 대북 압박
주변 5개국 단합된 대처가 절실
북 ‘사실상 핵 국가’ 묵인은 금물
추후 북핵 협상 국면에도 대비해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20년간 북한은 핵무기 소형화·경량화·다종화에 진전을 이루었고, 운반수단도 이동식미사일·대륙간탄도미사일·잠수함발사미사일 등으로 다양화하고 있다. 북한의 의도는 미국 본토 타격 및 2차 타격 능력을 갖추는 핵무기 전략화에 있다. 수십 기의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핵물질 확보, 미사일 적재 중량 증대, 대기권 재진입 기술 개발 등만이 남았다는 점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늦어도 2020년 이전에 완결해야 할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새 틀은 다음과 같이 짜야 할 것이다. 첫째, 북핵 문제의 경과와 북한의 협상 특성에 비추어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압박이 아니면 북한은 병진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나 98년 동해 잠수함 침투 사건에서 본 바와 같이 북한 행동을 바꾸려면 ‘힘의 우위(position of strength)’가 확보돼야 한다. 이를 위해 튼튼한 안보태세와 굳건한 한·미 동맹을 토대로 병진정책의 한 축인 북한 경제발전에 타격을 가하는 촘촘한 실효적·포괄적 제재망을 구축해야 한다. 강화된 안보리 결의, 양자 제재 및 제3자 제재(secondary boycott)를 결합하고, 실효적 제재로 금융거래 규제, 북한 입출항 선박 규제, 무역제재, 석유수출 제한, 노동자 해외취업 제한, 북한 선박 재보험 거부 등을 포함시켜야 한다. 시장화·달러화가 진행된 북한 경제에 달러 유입을 차단하는 것은 상당한 압박효과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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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유엔 안보리 결의에 어느 정도 강한 제재조치들이 포함되겠지만 중·러의 미온적 태도에 비추어 우리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한·미·일, 유럽연합(EU), 호주, 캐나다 등 ‘유사의지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을 통한 양자 제재로 보완해야 한다. 그리고 대북 제재의 실효성은 북한 무역·금융의 주된 통로인 중국의 이행 여부에 달려 있다. 미국 양원을 통과한 대북제재법은 제재 대상 북한 개인·기업과 연관된 제3국 개인·기업을 제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법 집행은 행정부에 맡겨져 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가 엄격한 법 집행을 통해 중국 개인·기업에 의한 제재우회를 막도록 외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 임기가 1년이 남지 않았고, 대선정국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셋째, 북핵 문제를 포함한 북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한·미·중·일·러 5개국의 단합된 의지와 행동이 필수다. 이란 핵 합의가 성공한 것은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의 일치단결된 태세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핵 실험 이후 미·중 간 책임공방이 발생하고,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러의 반발로 한·미·일 대 중·러의 대립구도 조짐을 보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중 전략 소통을 적극화하고 양국 국민감정 악화를 막는 동시에 사드를 둘러싼 미·중 전략적 대립을 해소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북핵 대비 안보태세는 의연히 구축하되 우리의 전략 공간을 불필요하게 축소시키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넷째, 당분간 대북 압박에 외교력을 집중해야겠지만 장차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협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이에 대비해야 한다. 이미 미·북 간에 평화협정 교섭에 관한 탐색적 의견교환이 있었고, 중국은 6자회담과 평화협정 교섭을 병행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이러한 협상은 제재조치가 일정한 효과를 낸 뒤 고려하고, 핵 활동 동결과 감시체제 도입을 전제로 해야 한다. 또한 북한의 시간 끌기를 막기 위해 시한을 설정하고, 실패할 경우 보다 더 강력한 제재를 부과한다는 데 5자가 합의해야 한다.

 다섯째, 북한을 인도·파키스탄처럼 ‘사실상의 핵 국가’로 묵인하자는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 비핵화 대신 동결과 비확산으로 중점을 옮기자는 미국 지크프리트 해커 박사의 주장이나, 북한 핵무장을 적법화하지는 않되 사실상 묵인하자는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추레이 연구원의 주장은 이런 예다. 이런 주장들이 공식화되면 비핵화가 물거품이 되므로 미연에 차단해야 한다.

 북한의 핵은 동북아 평화와 한반도 통일의 최대 장애물이다. 이제 우리는 북핵 문제 해결과 북핵 위협 대응을 위해 모든 국가역량을 모아야 한다. 북핵은 북한이 생존을 걸고 하는 도박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와 함께 임계점까지 몰아붙일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다. 어려운 때일수록 객관적이고 냉정한 상황판단에 기초한 전략적 사고로 임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