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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알바 뛰면 100만원, 실·팀장은 200~300만원"···대학로 삐끼의 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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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대학로. 이곳에선 호객행위를 하는 소위 `삐끼`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신인섭 기자

주말에 서울 대학로를 혹 나가봤는지.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를 나갈 때면 어김없이 마주치는 이가 있다. 속칭 '삐끼'라 불리는 호객꾼이다. 연극·뮤지컬 리스트가 빼곡한 책받침을 들고는 "배꼽 빠져요"라며 옷깃을 붙잡는다. 때론 앳되고 간혹 껄렁댄다. "삐끼가 대학로 물 흐린다"라며 숱한 연극인들이 목청을 높이지만 잡초같다. 단속을 비웃으며 활개친다. 그래서 "뒤에 조폭이 있다" "점조직이다" 등 소문만 무성하다.

과연 대학로 삐끼는 누구인가. 그 세계를 알아보고자 본지는 삐끼 경력 5년의 박모(29)씨를 접촉했다. "이 바닥 좁다. 나라는 낌새라도 보이면 당장 떠야한다"며 익명을 요구했다. 박씨와의 인터뷰는 18일과 19일 두 번 진행됐다.

단도직입적으로 삐끼는 누구인가.
삐끼라는 말 거북하다. '전단팀'이라고 해달라. 제작사마다 기획팀·마케팅팀 있지 않나. 그런 업무처럼 전단팀은 기본적으로 공연 소개하는 전단지 만들고 돌리는 일을 한다. 홍보 직원인 셈이다. 단지 그 일을 책상에 앉아 있지만 않고 거리로 나와 적극적으로 한다.
특정 공연제작사에 속해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렇다. 일명 삐끼라고 불리는 '전단팀'이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멀쩡한 대학로 제작사에 속해 있다. 가장 왕성하게 전단팀을 운영하는 곳은 세 군데, M·S·Y다. 세 제작사는 1년에 보통 서너편의 로맨틱코미디를 올린다. 그중엔 5년 이상 롱런하는 연극도 있다.
전단팀은 어떻게 구성되나.
피라미드 구조다. 실장 한명에 팀장 서너명, 그리고 각 팀장 아래에 5∼10명 이상의 '알바'가 있다. 실장은 회계정산·자리배치 등을 하고, 팀장은 알바 관리·교육 및 현장 지휘다. 알바는 대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다. 주말엔 고교생 알바가 많다. 전단팀은 비수기때는 20명, 연말·방학 등 성수기때는 40명 정도 된다. 크리스마스 이브 같은 대목일엔 각 팀별로 80명까지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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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는 어떤가.
기본급 없다. 손님 물어오는 데로 돈 번다. 비율은 정해져 있다. 전단팀 판매액중 35∼40%가 몫으로 떨어진다. 티켓 한 장 당 실장이 5%, 팀장이 10%, 알바가 20∼25%다. 예를 들어 1만원짜리 티켓 팔면, 손님 데려온 알바가 2000∼2500원 가져간다고 보면 된다. 알바는 평일·주말 다 뛰면 월 100만원 안팎 번다. 실·팀장은 200∼300만원 가량된다. 수입은 웬만한 대학로 배우보다 낫다. 현장까지 직접 뛰는 에이스급 실·팀장은 월 500만원 찍는다. 4,5년전 경기 좋을 때는 월 1000만원 넘긴 이도 있었다.
구역은 정해져 있나.
가장 인기있는 구간은 다 함께 들어가고, 나머지는 독점 방식이다. 크게 지하철 출입구와 메인 골목길로 구분한다. 우선 혜화역 3번 출구는 안 간다. 우리끼린 '미라 나온다'고 한다. 서울대병원 환자가 많아서다. 4번 출구도 별로 재미 못 본다. 노점상이 많아 시끄럽다. 주말에만 간다. 노다지는 2번 출구다. 출구 바로 앞쪽은 S만 들어간다. 조금 걸어나와 마로니에 공원 들어가는 입구쪽에선 M·S·Y 다 영업한다. KFC를 끼고 쭉 들어가는 골목길도 구간별로 주인이 있다. 초짜일 때는 독점 지역에서 훈련시키다가, 짠밥 먹고 '구라' 좀 칠 줄 알면 격전지로 내보낸다. 한두군데 군소·신생 전담팀도 있는데 핵심은 어림없고 외곽에서 겉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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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끼가 순위조작한다"고 원성이 높다.
예전엔 했다. 지금은 안 한다. 이런 식이었다. 예매사이트 순위 화면을 캡처해서 인쇄한다. 그걸 코팅해서 책받침 만드는데, 우리 공연을 가짜로 집어넣는다. 하나는 3위, 다른 하나는 7,8위로 한다. 1·2위는 너무 티 나서 안 한다. 그걸 보여주며 손님 꼬드긴다. 근데 모바일 시대 아닌가. 허위 순위 얘기하면 바로 검색해 '아니잖아요'라고 반박한다. 약발 떨어졌다.
뒤에 조폭이 있다는 소문이다.
10년전에는 그랬다고 한다. 동네 양아치면 몰라도 이런 푼돈을 놓고 어떤 주먹이 '쪽 팔리게' 들어오겠나. 요즘 경기 정말 안 좋다. 그나마 우리가 버틸 수 있었던 게 '작품은 후져도 삐끼한테 사면 싸다'는 인식덕이었다. 근데 최근엔 저가 연극이 수두룩하다. 1만원 밑으로 팔아선 우리도 남는 게 없다. 소셜커머스한테 직격탄 맞은 건 바로 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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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삐끼로 구성된 전단팀은 티켓 판매액의 35~40%를 챙긴다. 신인섭 기자

그래도 대학로 시장질서를 파괴하는 주범 아닌가.
우리가 하는 건 오프라인 영업이다. 영업은 전쟁이다. 전쟁터에서 무슨 반칙 운운인가. 이기면 장땡이지. 연극 흥행 안 되면 핑계 필요하니, 그걸 삐끼한테 돌리는 거다. 희생양이다. 그렇게 욕하면서 '표 팔아달라'고 뒤로 제안하는 건 또 뭔가. 메이저 제작사도 비수기때는 요청 들어온다. M·S·Y가 삐끼 영업한다는 건 대학로에서 얼추 소문 나 있다. 관공서도 눈치채고 있다. 그럼에도 생존하는 데엔 모종의 이유가 있지 않겠나.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대학로 삐끼가 말하는 '호객의 스킬'

멀쩡히 걸어가던 행인을 어떻게 허름한 극장 안으로 데려올까. 남의 지갑에서 돈 나오게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해 본 사람은 안다. 대학로 삐끼의 손님 낚는 4단계 기술은 치밀하다.

1.포착하라
영업은 확률 게임이다. 무턱대고 달려 드는 건 하수다. 조금이라도 관람 의사가 있는지를 포착해내는 게 첫 단추다. '오랜만에 대학로 나왔는데 연극이라도 한번 볼까'라는 뜻이 있다면 서성이게 마련이다. 무언가 찾는 듯한 떨리는 눈매를 간파하라. 그리곤 슬며시 다가간다. "뭐가 있는데요?"라고 말하는 이라면 '호갱'이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덤터기를 씌울 수도 있다.

2.흔들어라
요즘 관객 그리 어수룩하지 않다. 최근 인기 공연이 무엇인지 얼추 안다. "보고 싶은 거 저한테 말씀하세요. 다 있어요, 싸게 드릴께요"라고 접근하는 게 현실적이다. 손님이 특정 작품을 거론한다. 이때가 중요하다. 멈칫하며, 탄식을 내쉰다. 얼굴은 일그러뜨린다. 손님이 "왜요?"라고 할때 "아니요, 그냥…"이라며 시선을 회피한다. 지나가는 말처럼 "뭐 굳이…"라며 또 얼버무린다. 무언의 표정은 예상보다 강하다.

3.악담하라
기존 선택에 균열을 냈다면 이젠 확인 사살이다. 악평을 퍼붓는다. 작품별 매뉴얼이 있다. '옥탑방 고양이'를 보고 싶어하면 "남자들끼리 뽀뽀해, 그런 취향이셔?"라고 한다. '죽여주는 이야기'에 대해선 "아니 우울하게 자살하는 얘기 좋아해요"라고 고개를 젓는다. "1진 배우는 다 지방가서 오늘은 처음 서는 신인들인데, 그래도 볼래요?"도 단골 레퍼토리다.

4.연기하라
그래도 꺾지 않는다면 마지막 필살기다. 예매해 주겠다며 전화 건다. "실장님, 저에요." 물론 가짜다. "아, 자리 없어요, 기둥 뒤?" 이쯤에서 반쯤 포기한다. 그래도 고집부리면 또 전화거는 척을 한다. "보조석밖에 안돼요, 목욕탕 의자. 앞사람 한테 가리고…." 지루한 신경전은 결국 손님 입에서 "그럼 뭐가 볼 만 해요?"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끝난다.
그제서야 "이거 괜찮죠"라며 자신의 작품을 내민다.

"삐끼 근절" 목청 높이는 대학로
대학로 삐끼 역사는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막 전파를 타기 시작한 KBS '개그콘서트'의 이름을 빌린 짝퉁 코믹극이 호객 행위에 적극적이었다. "지나가는 행인 끌어들이는 것도 일종의 연습"이라며 출연진이 직접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특정 표시된 전단지를 돌려 그 회수되는 양만큼 돈을 주었다. 현재 삐끼 연극 대다수가 코미디물인 데엔 초창기 영향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2000년대 중반 개그 공연에 관객이 몰리면서 삐끼간 다툼도 빈번해졌다. 구역을 둘러싼 몸싸움과 신경전이 치열했다. 한때는 인근 건달들도 관여했다는 후문이다. 대학로 삐끼 경력 10여년의 정모(42)씨는 "우리끼리 다툼은 할 망정 선을 넘진 않았다"고 전했다.

그나마 관대하던 대학로 연극인들이 최근 "뿌리를 뽑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데엔 삐끼문화가 변질됐다는 우려 때문이다. 단지 자신의 공연을 알리며 관객을 모집하는 수위를 넘어, 순위조작·허위정보·기만행위 등으로 다른 공연에 실질적인 피해를 준다고 보고 있다. 명백한 영업방해라는 인식이다. 현재 호객행위는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는 경범죄다. 한국연극협회 정대경 이사장은 "기업화된 삐끼 연극 제작사는 폐업 등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려왔습니다] 중앙일보는 지난 2016년 2월 24일자 '"한 달 알바 뛰면 100만원, 실·팀장은 200~300만원"···대학로 삐끼의 증언'제목의 기사에서 M제작사가 삐끼 영업을 하는 등 불법으로 호객행위를 한다는 취지로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M제작사는 “전단지를 배포한 것은 사실이지만 불법으로 호객행위를 한 적은 없다”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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