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 대북 강경제재법안 압도적 표차로 통과, 조만간 정식 발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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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대한 고강도 제재 내용을 담은 법안이 12일(현지시간) 오전11시 50분 경(한국시간 13일 오전 1시50분) 미국 하원을 통과했다.

전체 하원의원 435명 중 410명이 투표에 참석했으며 찬성 408명 대 반대 2명이었다.

이에 따라 북한만을 겨냥한 대북 제재법안(H.R.757)이 처음으로 의회에서 성립됐다. 그동안 미국 의회에선 여러차례 대북 제재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었지만 상·하원 어느 한 곳에서 제동이 걸려 행정부로 넘어가지 못했다.

지난 10일 상원을 96대 0의 만장일치로 통과한 이 법안은 당초 이달 22일 이후 하원에서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한국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 조치, 일본의 자체적인 대북 제재 확대 등 북한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신속히 공조하기 위해 일정을 앞당겨 이틀 만에 통과시킨 것이다.

대북 제재 법안이 상·하원을 통과함에 따라 이르면 다음주 초, 늦어도 19일에는 법안이 백악관으로 이송될 예정이다.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열흘 안에 서명하면 정식 법률로 확정돼 즉시 발효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 대응에 한·미·일이 긴밀히 공조하고 있는 만큼 미 의회가 결정한 이번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법안의 대부분은 "제재를 할 수도 있다(may)"란 표현으로 행정부에 재량권을 부여하는 식으로 구성돼 있어 실제 오바마 행정부가 법률에 나와 있는대로 대북 강경 제재에 나설 지는 미지수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이번 대북제재법안 처리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 의회는 당을 불문하고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도발을 매우 엄중하고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면서 "신속성과 정치적 의지 측면에서 미 의회가 전례 없이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하원을 통과한 법안은 대북 금융·경제제재를 강화해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 사이버 공격능력 향상, 북한 지도층 사치품 구입 등에 쓸 수 있는 주요 외화 획득이 어렵게 자금줄을 전방위로 차단하고 관련자들에 대해 의무적으로 제재를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제재의 범위를 북한은 물론 북한과 직접 불법거래를 하거나 북한의 거래를 용이하게 하는 자 또는 도움을 준 제 3국의 '개인'과 '단체' 등으로 확대할 수도 있는 '세컨더리 보이콧(부차적 제재)'의 요소를 포함했다. 다만 2010년 이란 제재 법안과 달리 '제3자'란 표현을 직접 표기하지 않고 대신 '누구도(anyone)'란 애매한 표현을 사용했다.

다만 행정부의 재량권을 대폭 부여한 이번 법안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가 미온적 반응을 보일 경우 의회가 추가 입법에 나설 가능성도 제제기된다.

미 의회는 보통 이란처럼 제재 대상국가를 특정해 제재법안을 마련한 뒤 행정부에 포괄적인 재량권을 주지만, 행정부가 제재권한을 효과적으로 집행하지 않으면 추가 입법을 통해 그 재량권을 줄이고 제재를 강제적으로 부과하도록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번 법안은 또 흑연을 비롯한 북한 광물이 핵개발 자금으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광물거래에 대해서도 제재를 하는 내용도 처음으로 담았다.

법안은 이와 함께 사이버공간에서 미국의 국가안보를 침해하거나 북한 인권유린 행위에 가담한 개인과 단체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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