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남기업 “대여금 52억 반환을” 조합 “정치인한테 받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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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검찰의 ‘자원외교 비리’ 수사 착수 직후 ‘성완종 리스트’를 남기고 숨진 성완종 전 회장의 경남기업이 경기도 안산의 재건축조합과 50억원대 대여금 반환 문제를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2012년 4월 성 전 회장의 지시로 경남기업이 따낸 3층 연립주택 1100여 세대의 32층 아파트 재건축사업과 관련해서다.

단원구 원곡 1100여 세대 분쟁

 경남기업이 조합의 시공사 변경을 이유로 사업비 명목으로 지급한 돈을 돌려 달라고 하자 주민들은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에게서 받으라”며 맞서고 있다. 경남기업은 지난해 상장폐지됐으나 지난 3일 법원의 기업 회생 계획 인가를 받은 상태다.

 11일 본지 취재 결과 경남기업은 2012년 4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일대의 ‘원곡 연립2단지 주택 재건축사업’ 시공사로 선정됐다. 공사 규모는 2500억원대였다.

 원곡 연립2단지는 1만9000여㎡ 부지에 3층 높이의 영세 연립주택 100여 동(1100여 세대)이 모여 있는 곳이다. 한 채당 평균 49.5㎡(15평)인 서민주택이다. 박정희 정부 말인 1979년부터 인근 반월공단 근로자들이 모여 살았다.

이곳을 지하 2층, 지상 25~32층 규모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재건축하는 공사를 맡은 경남기업은 2012년 9월 조합 측과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엔 ‘2014년 착공해 3년 내 입주를 목표로 하고, 설계·감리 용역비 및 조합 운영비 등 사업비 244억8900만원을 대여금 형태로 조합에 지급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듬해 경남기업은 3차 워크아웃을 당했다. 지난해 검찰 수사와 상장폐지·법정관리로 이어지면서 사업비 지급이 중단됐고 사업도 좌초됐다.

이 과정에서 조합 측은 경남기업에 공문을 보내 “사업비를 지급하라. 줄 수 없다면 그 사유를 정식 공문으로 달라” 고 요구했다. 답변이 없자 지난해 12월 재건축 조합원 총회를 열어 시공사를 D사로 바꿨다.

 그러자 경남기업은 올 들어 재건축조합에 “지금까지 투입된 사업비·이자 등 52억원을 돌려달라”는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본지가 입수한 경남기업 이성희 법정관리인 명의의 내용증명서에는 ‘재건축 사업이 지연된 것은 조합의 인허가 지연 등 복합적인 문제 때문에 생긴 것이고 경남기업 때문이 아니다. 입찰보증금·사업비 44억3400여만원과 이자 7억8000만원을 상환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1월과 2월 두 차례 발송됐다.

 그러나 재건축 조합원들은 “경남기업이 2012년 이후 사업 진행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지난해 검찰 수사로 성 전 회장이 정치인들에게 (사업자금을) 로비 자금으로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는 입장이다.

이 일대는 주거환경이 낙후돼 거주민 대부분이 기초수급과 연금 등으로 연명하는 고령자다. 재건축 비용이 늘어날수록 빚을 늘리거나 동네를 떠나야 하는 처지다.

조합원 중에는 세월호 사건으로 사망한 단원고 장모군의 할머니 이모(68)씨도 포함돼 있다. 장군이 태어나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자란 집이라고 한다.

장군을 키워 온 할머니 이씨는 “재건축을 기다리다 손주들을 좀 더 깨끗하고 넓은 집에서 살게 해주고 싶어 단원고 근처로 이사 갔다가 변을 당했다”며 울먹였다.

 박세영 조합장은 “주민 대부분이 먹을 것, 입을 것 참아 가며 어렵게 마련한 10여 평 낡은 연립주택 건물이 재건축 되기만을 기다렸다”며 “하지만 재건축사업은 1년 이상 지지부진했고 성 전 회장이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했다는 소식만 들렸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성명서 발표 등 집단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경남기업은 법적 조치로 맞선다는 입장이다. 경남기업 관계자는 “조합의 운영비는 완공과 분양을 전제로 한 대여금이기 때문에 회수하는 게 당연하고 사업을 승계한 D사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라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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