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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시장 개방,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자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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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법률시장은 올해 유럽연합(EU)을 시작으로 내년까지 미국에 완전히 개방돼야 한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것이다.

한-EU FTA에 따라 올해는 영국을 포함한 EU 회원국 소속 로펌과 변호사들이 국내 법률시장에 진출한다. 또 한미 FTA가 내년부터 발효되면서 미국 로펌 등도 국내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이미 국내에는 미국과 EU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국내에 들어와 준비작업을 벌이고 있다. 법률시장 개방은 변호사가 국경을 넘어 외국으로 가서 법률사무소를 열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의 개방을 의미한다.

이러한 법률시장 개방은 3단계에 걸쳐 시행됐다.

한국과 미국의 FTA에 따른 3단계 법률시장 개방은 다음과 같다.

2012년 협정발효와 동시에 시행된 1단계는 미국 변호사에게 미국법, 미국이 당사국인 국제조약 및 국제공법에 관한 법률 자문을 허용하는 것이다. 2단계는 협정 발효 후 2년 내에 시행됐으며, 외국법 자문사와 국내 로펌 간에 업무제휴가 허용됐다. 국내법 사무와 외국법 자문사무가 혼재된 사건에 대한 공동 수임이 가능하고, 수익분배도 허용됐다. 문제는 협정발효 후 5년 내에 시행되는 3단계이다. 미국 로펌과 국내 로펌간의 합작 법인의 개설과 외국 로펌의 국내 변호사 고용이 허용되는 완전 개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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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법무부가 마련한 외국자문사법 개정안은 외국 로펌에게 무한 책임을 지우면서도 일정부분 제한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 등 외교사절은 "한국 법률시장의 개방 수위를 높이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미국 대사 등이 국회 법사위원장을 방문한 것을 놓고 주권 침해 논란이 이는 등 법률 시장 개방은 올해 또 하나의 정치·국제·경제·사회적 현안으로 떠 올랐다.

◇법무부 "외국 지분 제한해야" VS 외국계 로펌 "국제적으로 사례 없어"
먼저 법무부 개정안과 이에 대한 외국 로펌 들의 불만을 살펴보자.

개정안은 전기통신 사업법, 방송법 등 외국인 지분을 제한하는 다른 법령의 규정을 참고해 합작 법무법인에 대한 외국 합작 참여자의 지분을 49%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국 사절들은 항의서한을 통해 "국가 기간산업 관련 법에 따라 법률서비스 시장의 지분을 제한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볼 때 매우 이례적이며,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기간산업에 대한 지분규제는 시장에 대한 독과점 성격 및 국민경제에 끼치는 영향 때문인데,법률서비스를 기간산업의 개념에 포함시키는 것은 타당한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외국 로펌들이 국내 대형 로펌보다는 중소형 로펌을 합작 파트너로 선호할 가능성이 많고 결과적으로 합작 투자기업에 참여한 국내 로펌이 사실상 명의만 제공하는데 그칠 우려가 있다. 이는 합작투자기업이 사실상 외국 로펌의 자회사처럼 운영될 위험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법무부측 해명에도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현실에 바탕하지 않은 가정에 따른 자의적 해석"이라며 "다국적 로펌들의 해외 지사 운영실태를 보면 실제로 지사가 세워진 국가의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는 변호사들이 로펌 운영의 주축이 됐다"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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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합작 법무법인의 파트너급 외국 변호사 수가 한국 파트너의 수보다 많을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다.

외국계 로펌들은 "경쟁과 자율이라는 개방의 원칙에도 맞지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며 "합작 법무법인의 한국 파트너가 예기치 않게 사임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현실적으로 이 비율을 항상 유지하기는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법무법인의 내부 구조 및 운영사안은 합작 투자 참여자들의 자율에 맞기는 것이 합리적이고 타당하는 주장이다.

한국에 진출해 있는 미국과 EU의 로펌 20개사가 회원으로 있는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협회는 "FTA 조약에 따라 한국 법률시장의 최종적 개방이 올해 7월(EU)과 내년 3월(미국) 이뤄질 것이란 합리적 기대를 갖고 서울사무소를 설립했고, 상당한 인적·물적 투자를 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법률시장 개방에 대한 법령도 FTA의 정신과 합의에 맞춰 의미 있는 개방을 보장하고,경쟁에 따른 이익이 한국사회와 법률서비스 수요자에게 돌아가는 방향으로 개정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법무부와 한국 로펌 "시장 완전 개방하면 핵심 정보 유출"
반면 법무부와 한국 로펌들의 생각은 다르다.

미국과 EU의 요구에 따라 법률시장을 완전 개방할 경우 핵심 정보 유출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법률시장 규모는 지난해 매출액 기준으로 2조 5000억원 정도다. 우스개 소리로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개고기 시장보다 못하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로 그 규모는 작다. 한국에 지사가 있는 세계적 규모의 로펌인 디엘에이파이퍼와 배이커앤드매켄지의 지난해 각각 매출 규모인 24억달러(2조5000억원)와 비슷하다. 때문에 한국 로펌들은 "외국계 로펌에 완전 개방할 경우 한국 시장 잠식이 불가피하고,이는 법률소비자인 국민들에게도 피해를 줄 것"이라고 말한다. 법률시장의 잠식은 주권의 침해와도 맞닿을 수 있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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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한-EU FTA 발효로 법률 시장이 개방되자 대한변호사협회는 관련 대책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기자회견 중인 신영무 당시 협회장.

◇신뢰 잃은 한국 법률 시장, 우물 안 개구리 될 텐가
그러나 FTA에 따라 법률 시장의 개방이 이뤄진 만큼 당초 취지를 최대한 살려야 한다.

그동안 한국 법률시장은 법조인들의 뿌리 깊은 학연, 지연에 얽힌 전관예우와 불투명한 회계처리,부 당한 수임료 논란 등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법률시장 개방에 따른 정보 유출보다 사법 신뢰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상대적으로 큰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고 혁신적으로 법률시장의 문호를 열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제까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국민들 위에 군림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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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 Another
우리의 법률 시장 개방을 놓고 엉뚱하게도 주권 논쟁으로 비화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주한 미 대사 등 외교관들이 국회에 찾아가 항의 서한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우리의 주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으로 보면 외교 사절 역할이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외교활동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오히려 외교관들의 항의를 이유로 개정안 처리를 무기한 연기하겠다는 국회의 발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뜩이나 최악으로 기록된 19대 국회가 또 다시 아무 것도 처리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법 개정안에 문제가 있다면 소위를 열어 회의도 하고,다시 공청회도 열어 의견 수렴을 거쳐야하는 것 아닐까요. 국회가 할 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법무부는 같은 법조인들을 감싸고 도는 듯한 모습이 만뜩치 않은 것은 저만의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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