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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누리과정 혼란, 예산 검증과 체계 개편으로 막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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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엄동설한에 발생한 보육대란의 불길은 일단 잡혀 가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 중 유일하게 유치원·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 무상교육·보육) 예산이 ‘0’원인 서울도 시의회가 오늘 의원총회를 열고 수정 편성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로써 일부 진보 교육감과 야당이 다수인 지방의회의 예산 편성 거부로 두 달째 이어진 유치원 누리과정 혼란은 고비를 넘기는 형국이다.

하지만 더 큰 불이 기다리고 있다. 서울·경기·광주·전북·강원 등 5곳은 어린이집 예산이 전혀 없다. 진보 교육감들이 어린이집은 중앙정부 책임이라며 아예 예산을 편성하지 않아서다. 5곳은 정부가 긴급 지원키로 한 목적예비비 3000억원도 가지 않는다. 경기·광주·강원은 단체장이 나서서 임시로 예산을 대기로 했지만 서울은 박원순 시장이 꿈쩍도 않는다. 조만간 불길이 더 번질 우려가 있다.

상황이 급박한데도 정부와 교육감들은 여전히 ‘네 탓’만 한다. 진보 교육감들은 어제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라”며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준식 교육부 장관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며 거부했고, 검찰과 감사원은 예산 미편성 교육청에 대한 수사와 감사에 착수했다. 이런 극한 대립에 국민의 피로도는 한계에 이르렀다.

지금 상황에선 예산의 적정성을 따져보는 게 중요하다. 중립적인 검증기구를 가동해 교부금만으론 교육감들이 누리예산 4조원을 정말 편성할 형편이 안 되는 것인지, 아니면 정파적 의도나 방만한 살림 탓인지를 가려내야 한다. 당연히 그 결과는 국민에게 알리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다음은 법령 정비다. 교부금에서 누리예산을 의무 편성토록 한 지방재정법 시행령과 무상보육 범위를 유치원과 어린이집까지 확장한 유아교육법 시행령이 각각 상위법에 어긋나는지 여부다.

최종적으론 예산 편성과 시행 주체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처음부터 정부 총예산에 넣거나, 박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교부금에 별도 항목으로 지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차피 다 국민 세금 아닌가.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로 이원화된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관리 체계 통합도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