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국 아이오와주 코커스 이변이 던지는 메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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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 대선의 시작인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서 1일(현지시간) 이변이 빚어졌다. 민주당 경선에서는 별 존재감 없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 화려한 경력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사실상 비겼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낙승이 예상되던 공화당 선거에서는 줄곧 여론조사에서 밀리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이 아예 역전승을 거뒀다.

아이오와주는 인구가 310만 명에 불과해 전체 선거인단의 1% 남짓 배출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는 전체 판을 가늠하게 해주는 대선의 풍향계여서 그 의미가 자못 크다.

크루즈의 낙승은 선거운동과 조직의 승리로 분석하는 시각도 많다. 하지만 그동안 막말을 서슴지 않으며 인기에 영합해온 트럼프의 지지도에 적지 않은 거품이 끼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비록 여론조사 때에는 적극 반응하지 않지만 미 보수주의자들 역시 막상 지도자를 택할 때는 보다 온건하고 이성적인 인물을 선호한다는 신호로 읽히는 것이다.

트럼프의 부진 이상으로 눈여겨볼 대목은 샌더스의 선전이다. 미 의회의 유일한 사회주의자인 그는 출마 선언 때만 해도 주류 언론에서 무시할 정도로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랬던 그가 자원봉사자와 풀뿌리 후원금만으로 이만한 성과를 올린 건 놀라운 일이다.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최고의 목표로 표방하는 그가 자본주의의 총아라는 미국 땅에서 이만한 성적을 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많은 석학의 경고처럼 지금은 어느 때보다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시대다. 좌파 정치인의 성공을 상상도 못했던 미국에서 부자 증세, 초대형 금융기관 해체, 무상 대학교육 등 북유럽식 복지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샌더스가 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경제적 소외감을 느끼는 계층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그런 국민적 공분이 아이오와주 코커스의 이변을 낳은 것이다. 이는 미국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도 중산층의 몰락과 빈곤층 급증으로 국민적 불만이 쌓여 가고 있다. 아이오와주 코커스가 던지는 불길한 메시지를 정신 바짝 차리고 지켜봐야 할 때다.